빛 바랜 수첩
겨울비 내리다
앞산이 잘 바라다 보이는 내 연구실 베란다에는 붙박이 옷장이 하나, 흔들의자가 하나, 화분이 셋 그리고 서랍을 네 개 가진 캐비닛이 하나 있다. 캐비닛 셋째 서랍에는 아버지가 들어 있다. 아버지의 인생이 들어 있다. 살다 가신 해 수만큼 올망졸망, 손 수첩에 새겨놓은 아버지의 비망록이 들어 있다. 퍽 오랫동안 나는 아버지의 비망록을, 아버지의 인생을, 서랍 속에 갇힌 아버지를 열어보지 못했다. 얼마나 갑갑해 하실까 띄엄띄엄 걱정 속에 십 년이 흘러갔다.
겨울비 내린다. 수성못을 지날 때 내리던 가랑비가 대명동에 이르러자 겨울비 답잖게 유리창을 두드린다. 아침엔 인도어에서 세 바구니의 공을 쳤고 오후엔 대학원 수업 세 시간을 해야 한다. 오늘 나는 마침내 셋째 서랍을 열고야 말 것이다. 아버지를 만나고야 말 것이다 작정한다. 갈색은 우울한 침묵의 빛깔이다. 술 취해 가까스로 몸을 가누시는 아버지는 흰 동정 끝이 조금 흐트러진 갈색 두루마기를 입고 계셨다. 기와집 한 채와 초가집 두 채로 조성된 우리 집은 대궐보다 훨씬 작았지만 대궐의 후원보다도 훨씬 정갈하였다. 그 집을 자랑하고 싶었고 그 집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고 싶었다. 아버지가 입고 계신 두루마기의 갈색, 갈색의 우울과 갈색의 침묵은 손이 있고 발이 있는 듯 내 멱살을 끌고 어디론가 하염없이 가는 것이었다. 꿈속의 세계는 자주 무성영화 같아서 안타깝다. 황량한 겨울 실개천을 건너 갈색 두루마기의 뒷자락이 앞산 쪽으로 사라질 때까지 물끄러미 멱살 잡혀 끌려가는 나를 바라볼 뿐 생각은 말로 바뀌어지지 않았다.
시골 어머니께 안부 전화 한 통, 문화부 기자에게 전화 한 통, 이 메일 답장 하나, 그리고 사이버 카페 두 곳과 시와반시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다 점심때가 되었다. 후배 교수 두 분과 보신탕을 먹었다. 개가 코를 문다고 사람이 개의 코를 물 수야 있겠는가; 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야. 부탁 받은 원고 걱정 때문에, 진통제로 견디는 건강 걱정 때문에 걸려온 오규원 선생의 전화로 개에 대한 이야기는 중단되고 말았지만 참으로 우연히 오늘 점심은 소재도 화제도 개 중심이 되었었다. 돌아보면 두루 개판이니까.
서류 때문에 편집장이 잠시 다녀가고, 안부 전화 한 통, 이번 토요일 산에 가자는 전화 한 통, 연하장 한 통, 청첩장 한 통 그리고 뜻 밖에 실키라는 이름을 가진 난초 화분 하나를 선물 받았다. 이렇게 하루가 갔다. 셋째 서랍은 내일 열기로 마음먹는다. 십 년 동안 미루어 두었던 일을 하루만 더 미루어 두기로 한다. 하루 종일 궂은 비 내렸다.
교무처장실에 들러 커피 한 잔 마시고 나오는 길에 무심코 1강의동을 바라보니 내 연구실 블라인드 커튼이 바람에 펄럭인다. 빗소리가 듣고 싶어, 빗소리가 가져다주는 흙 냄새, 풀 냄새, 나무 냄새가 맡고 싶어 어제 나는 연구실 창문을 열어 두었었다. 깜빡 잊고 휴대폰도 두고 갔었다. 지난 밤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 안심되기도 하고 허전하기도 하다. 세상으로부터 캄캄하게 지워져 있었다는 사실은 끔직하다. 컴퓨터를 켜고 이 메일을 점검한다. 불필요한 편지를 세 통 지웠다. 홈페이지를 거쳐 문예대학 카페 문을 열어 본다. 바다를 소재로 쓴 회원 시 한 편이 새롭게 올려져 있다. 문예대학 20기를 수료한 개인 택시 기사의 글이다. 멋을 부리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하루 이틀 지나면 누가 도움되는 이야기를 들려 줄 것이다. 포에지92를 찾아간다. 시와반시 봄 서가 때문에 김정용 시인이 쿵쿵쿵쿵 드나든 흔적이 있고, 김영근 시인과 류시원 시인이 몸이 달아 자주 들락거리고 있다. 제 몫을 다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아름답다. 후배 교수의 전화를 받았다. 점심 약속, 비오고 심심해서 내 생각났다고, 심심풀이 땅콩이 언뜻 스치고 한 옛날 비둘기호 열차가 언뜻 황간 굴다리로 빠져드는 것이 보였지만 기분 상할까봐 내버려두었다. 누가 내 방문을 두드린다. 대학원생이 인사하러 왔다가 불꺼진 방을 의아해 한다. 촛불 켜고 컴퓨터를 두드리고 있는 나를 신기해한다. 미안하고 겸연쩍은 듯 다음에 또 오겠다며 서둘러 일어선다. 학군단 학생이 방문을 크게 두드리고 과제물을 두고 간다. 다시 더 요란스럽게 방문을 두드리고 잘못 제출한 과제물을 바꾸어 두고 간다. 나는 지금 출근해서 정각 12시까지 1시간 30분간 있었던 일을 시시콜콜 기록하고 있다. 세 번째 서랍을 열어야 하는데... 서너 걸음 등 뒤 칸막이 유리창 너머 아버지의 일생을 끄집어내기가 왜 이토록 망설여지는 걸까. 지금 내게는 유예/지연/슬픔 등의 말들이 먼지 알처럼 떠다니고 있다.
베란다를 바라본다. 흔들의자가 저 혼자 젖은 앞산을 바라보고 있다. 구름이 제 몸의 무게를 못 이겨 쉬었다 가나보다. 몽상에 잠긴 늙은이처럼 느린 걸음으로 계곡과 계곡을 건너 산과 산을 지나 하늘로 가고 있다. 아버지와 흔들의자, 참 어울리지 않는 관계이다. 흔들의자에 앉은 아버지를 나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아버지와 흔들의자
아버지의 일생은 부대끼는 삶, 바람 잘 날 없는 일상의 연속이었다. 아버지 6주기 기일에 모여 앉은 우리는 이렇게 고인을 추모했었다.
아버지, 하늘 가신 6주기를 맞아 저희 이렇게 한데 모였습니다.
저희는 지금 누구나 잠깐 머물다 떠나가야 한다는 사실 앞에 목 메입니다. 가고 옴이, 만나고 헤어짐이 생의 이치임을 모르지 않지만 남은 자의 마음은 언제나 젖은 회한으로 힘이 듭니다. 하늘 향해 무릎 꿇고 지금 저희는 당신이 저희에게 남기고 가신 뜻과 저희에게 주고 가신 당신의 사랑을 기리고 있습니다.
허둥지둥 살아가는 저희들의 일상은 부끄러운 일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잠깐 살면서 많이 누리고 싶어하고, 떠난 후 우리가 머물다 간 자리가 어떻게 기억될까 망각하며 살아가곤 합니다. 저희들은 넉넉함보다는 부족함이 많아서 늘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의 생각과 입장만을 앞세워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서로 이해하고 서로 용서하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지혜를 늘 목말라합니다.
당신께서는 1918년, 가난한 집안의 장손으로 태어나셔서 1991년 눈감으시기까지 가난한 가정, 궁핍한 시대를 참 어렵고 힘들게 늘 부대끼며 한평생을 보내셨습니다. 70여 년 간 살다 가신 당신 일생의 가파름은 누구나 견딜 수 있는 가파름이 아니었고, 그해 가을 햇빛이 곱고 맑은 날 아침 마침내 부려놓으신 이승의 등짐은 누구나 쉽게 질 수 있는 등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오직 집안의 융성과 자식들 교육을 위해 어느 한 순간도 부대낌의 나날과 무거운 등짐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의 평생은 누리는 삶이 아니라 베푸는 삶이셨으며, 바람잔 날의 편안한 삶이 아니라 바람 많은 날의 손 시린 삶이셨고, 배부른 삶이 아니라 늘 배고픈 삶이셨습니다. 당신의 일생은 저희들에게 올곧게 살아가는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셨고, 용서하고 인내하고 베푸는 삶의 가치를 가르쳐 주셨으며, 서로 믿고 의지하고 소망하는 아름다움을 실천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아버지, 저희는 지상에서의 가난은 하나님 나라에서는 부유함이며 이승에서의 고난은 당신 계신 그 나라에서는 축복임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당신께서 남기신 사랑의 참뜻이 6주기를 맞아 이렇게 무릎 꿇은 저희 자손들의 가슴 가슴마다 더욱 빛나는 발자취로 살아 숨쉬고 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일상 속에 언제나 당신의 체온이 함께임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몸은 저희 곁을 떠나셨지만 피를 물려받고 체온을 나누어 가진 저희들의 기억 속에 늘 당신은 자애로운 아버지로 살아 계심을 행복해합니다. 당신의 꿈과 희망이 저희들의 꿈과 희망임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부디 영면하세요.
그러나 나는 자주 망자를 잊고 망자의 부대낌을 잊고 언제나 큰물지고 바람 잦은 가파름을 잊고 그러나 나는 너무 자주 세속의 흔들의자에 앉아 있곤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한번도 생전에 아버지를 흔들의자에 앉혀드리지 못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피돌림이 멎고 마지막 호흡이 멎고 싸늘하게 굳은 몸이 병풍 뒤로 옮겨지는 것, 울고불고 가슴 치며 애통해하던 망자의 삶에 대한 뜨거운 사랑, 아픈 기억이 시간에 부식되어 싸늘한 고철 부스러기로 부스러지는 것, 그러므로 삶이란 빗소리가 잠시 앉았다 가는 텅 빈 흔들의자 같은 것.
쓸쓸함에 대하여
관이 내려지고 헌화를 하고 흙을 뿌리며 용서하세요, 사랑해요, 안녕히 가세요, 나는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오냐, 오냐 하시는 듯 낙엽이 지고, 그래, 그래 하시는 듯 바람이 불고, 혼자 먼 길 떠나시기 얼마나 쓸쓸했으면 청청 하늘 솔개 한 마리 불꺼진 마을을 가만히 소문 없이 삼키고 있었을까.
그날 아침 화장실에 있던 나는 어머니의 다급한 부름을 받았다. 마지막 숨을 들릴 듯 말 듯 몰아 쉬고 계셨다. 투병의 세월은 길어서 아버지의 임종은 느닷없었다. “예야, 누 집에 초상났지?” 임종하시기 바로 전, 마지막 말씀이셨다. “아니요, 편찮으시니까 헛걸 보신 게지요” 마지막 대답이었다.“ 이승에서의 마지막 대화는 이렇게 남루했었다. 빨리 일어나 시골에도 가고 하셔야 할텐데요.” “이래 가지고 고향엔 가서 뭘 해...집에 가야 하는데...” “여기가 아버지 집인데 가긴 어딜 가세요.” 자식에게 기대어 죽음을 기다리는 당신의 처지가 낭패스러운 듯 잠자코 턱수염 까칠한 웃음을 보이신 지 사흘 뒤의 일이었다. 나는 한 번도 아버지를 흔들의자에 앉혀 드리지 못했다.
죽음은 나의 것이 아니라고 믿었다. 죽음은 남의 집의 일이라고 믿은 적이 있었다. 울타리가 무너지고 찬바람이 닥쳤다. 가슴이 시려웠고 일상은 한갓 텅 빈 여백이었다. 당신이 일군 땅, 당신이 걷던 길, 당신이 심은 초목, 당신이 사랑한 숙명의 땅 임곡리, 당신의 손때 묻은 자잘한 가재도구들이 하얀 소복을 하고 있었다.
아무도 당신을 보내지 않았네
버들개, 소또골, 여수바우, 매봉재, 논틀마, 말매기, 선모꼴, 구병산 찌렁찌렁
아무도 당신을 보내지 않았네
개망초, 쇠비름, 아욱, 상추, 쑥갓, 호두나무, 감나무, 고욤나무, 대추나무, 자귀나무, 모란꽃, 함박꽃, 줄장미, 채송화, 접시꽃, 담쟁이, 우산이끼 자욱히
자욱한 당신을 보내지 않았네
비누, 칫솔, 면도기, 돋보기, 성경책, 전화기, 라디오, 에프킬라, 파리채, 두고 가신 약봉지, 큰물지고 바람 많은 날들의 빛 바랜 수첩 가지런히
가지런한 당신을 보내지 못하네
벽에 걸린 아버지, 툇마루에 나앉아 빈집 지키시는, 하얀,,,,,,
-「여백」
유품을 태웠다. 한 사람의 일생이 연기로 휘발했다. 사리를 수습하듯 아버지의 비망록, 빛 바랜 수첩을 가방 속에 챙겼다. 지금 나는 큰물 지고 바람 많은 날들을 만나야 한다. 다시 하루가 갔다. 오늘도 나는 세 째 서랍을 열지 못한다. 7시 10분, 창 밖은 캄캄하다. 슬픔의 유예? 그리움의 지연? 나는 지금 아마도 쓸쓸함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것이다.
할아버지 심으신 감나무 그늘 아래 초가집 에워 두른 토담이 있고 아무 데나 뿌리내려 애처로운 강아지풀 쭉쭉 뻗어 가는 담장이 넝쿨 잎에 주룩주룩 장대비 하염없이 내립니다 하염없는 아버지 저녁 상머리 어머니 하염없이 웅크리고 계시고 장대비 하염없이 주룩주룩 내립니다 대처로 옮기든지. 큰길가로 나앉든지, 궐련 연기 앞세우고 아버지 하염없이 아랫마을 가시고 당신 손으로 농사도 못하면서, 아이들 교육이 걱정, 이신 하염없는 어머니 장대비에 젖으시고 적막강산 흔드는 아버지 술주정 쩌렁쩌렁 구병산 되울려 오고 무논 가득 수런대는 개구리 잠재우고 어린 날 내 마음 빗소리 당겨 덮고 새우잠 듭니다 꼭두새벽 아버지 비이슬에 젖으시며 허물어진 토담 손질하시고 생솔가지 불지펴 어머니 말없이 아침밥 지으시고 장대비에 부대껴 허리 꺾인 강아지풀 새하얀 맨발가락 젖은 토담 움켜잡고 있었습니다
내 어린 날 장대비처럼 흰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 동서남북 앞 뒤 없이 지워지고 자동차 앞 뒤 없이 비틀거리고 앞뒤 없이 흰눈이 펑펑. 동서남북 열린 길 모두 막히고 태곳적 앞 뒤 없는 적막뿐입니다 앞뒤 없는 적막을 막막해 합니다 얘야 올해는 물조심하거라 예 살던 족제비 자리를 떴구나, 족제비 이사가면 큰물이지지, 큰물 지기 전에 산짐승 서둘러 제 집을 옮기지, 토담 손질하시며 혼잣말 맺으시던 아버지 홀로 가신 그 하늘 내려앉는 듯 흰눈이 펑펑. 아버지, 아버지 기운 내세요 이러시면 안돼요 담쟁이 넝쿨잎 찬서리에 무너지고 토담 갈비뼈 앙상하게 드러나고 사금파리 돌덩이 그 땅 움켜잡은 안간힘 풀려 메마른 강아지풀 목 꺾인 그해 가을 아침답 담담하던 어머니 크게 우시고 토담 와르르 한꺼번에 무너지고 이러시면 어떡해요 아버지, 아버지 식어 가는 발가락 새하얀 떨림을 멎었습니다 애처로운 강아지풀 실뿌리 같은 아버지, 아버지, 흰눈 이 앞 뒤 없이 펑. 펑. 펑. 펑. 쏟아지고 있습니다
할아버지 심으신 감나무 그늘에 발 묶이신 아버지, 믿음은 아무 데나 뿌리를 내립니다 뿌리가 터잡으면 몸 무겁고 몸 무거운 아버지 기차시간 놓치시고 아무 데나 대처로 옮겨가야겠다 시던 그날이 오기 전에 토담 무너지고 들쥐 산고양이 세월의 빈 헛간에 새끼를 치고 아버지, 아버지 안녕히 계세요 백미러에 비치는 황금의 감나무 처연한 횃불 그 언덕을 넘어와도 꺼지지 않습니다 얘야, 물조심해라, 아무래도 올해는 큰물이 지겠구나, 나 지금 아무 데나 큰물 속을 떠돌며 아무 데나 뿌리내릴 믿음도 없이 아무 데나 부딪쳐 이마를 다치고 아무 데나 멍들며 아무 데나 뿌리내린 내 아버지 쓸쓸함 부대끼던 그 시절을 그리워합니다
-「쓸쓸함에 대하여」
모든 뿌리는 쓸쓸함의 어미이다. 모든 뿌리는 빗소리에 젖은 땅, 정지된 시간의 육체이므로. 쓸쓸함의 깊이는 뿌리의 깊이이다. 뿌리 없는 존재, 뿌리 없는 사물, 하물며 뿌리 없는 생명이 어디 있을까. 모든 쓸쓸함은 할아버지 심으신 감나무 그늘 밑으로부터 뻗어 오른 줄기, 모든 쓸쓸함은 강아지풀 새하얀 맨발가락으로부터 휘날리는 나뭇잎, 쓸쓸함은 북풍, 앞 뒤 없는 적막, 쓸쓸함은 운명의 자물쇠, 그 언덕을 넘어와도 꺼지지 않는 황금의 감나무 처연한 횃불. 오늘도 그날처럼 펑. 펑. 눈이 오려는 듯 하늘 몸 무겁다.
아버지의 그날들
베란다 캐비닛 세 번째 서랍을 열었다. 가로막은 화분을 옆으로 조금 밀쳐야 했다. 1968년부터 1991년까지 아버지의 비망록인 빛 바랜 수첩은 모두 24권이다. 1970년의 것이 없는 대신 1979년의 것은 수첩이라기보다는 노트에 가까운 비망록이 한 권 더 있다. 70년의 것은 망실되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왜, 하필 68년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일까? 가시던 해 91년의 수첩 표지에는 아직 할말이 많이 남아 있다는 듯 파카 볼펜이 비스듬히 꽂혀 있다. 올망졸망 24권의 수첩 사이에 까만 가죽 지갑이 끼어 있다. 지갑 속을 조심조심 들여다본다. ‘이하욱 선생 남하 피난 중 대구여행 기념으로’라는 메모는 아마도 이 지갑을 소지하게 된 유래일 터. 청도군수, 청도경찰서장, 매전읍면장 세 사람의 명의로 발급된 장정증명서 한 장(청도군과 아버지는 무슨 관계가 있었을까?), 단기4283년 5월11일 제2사단장 육군준장 유재흥 명의로 발급된 징병소집유예증명서 한 장, 그리고 상주군화북면의회 부의장 姜 宇模라고 적힌, 콧수염을 기른 젊은 아버지의 흑백사진(아버지는 멋쟁이셨다) 위에 화북면의회 직인이 찍힌 신분증명서 한 장, 만지면 바스라질 듯, 명함 크기의 종이에 한자로 인쇄된 내 아버지의 가난한 존재증명!
1968년부터 91년까지 아버지의 그날들을 가지런히 챙겨 가방 속에 다시 넣었다. 햇볕이 잘 드는 남쪽 베란다, 예의 그 흔들의자 위에 얹어 두었다. 앉혀드렸다. 서랍 속은 갑갑할 터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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