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도 ․ 44
이따금 떨어지는 빗방울과 함께 이따금 우르륵거리는 쥐떼들과 함께 2008년 3월7일 모처 움막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허공과 공허는 다 같이 이름씨이다. 뼈다귀감자탕과 보쌈을 안주로 소주와 맥주를 밤늦도록 마셨다. 허공은 자연이고 공허는 인위이다. 소주와 맥주를 따로따로 마시다가 우리는 소주와 맥주를 섞어서 마셨다. 그대는 착해서 마시기 싫은 술을 내 식으로 벌컥벌컥 목마른 듯 마셔주었다. 잘 취해서 허공은 허공으로 발효하고 공허는 공허로 미끄러졌다. 허공과 공허는 비슷한 말이지만 섞이지 않는다. 허공하다는 말이 안 되고 공허하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천정에서는 보이지 않는 쥐들이 우르르 우르르 소나기를 신고 뛰어다녔다. 공허가 한 짓이다. 허공을 떠다니는 남도의 꽃소식이 내 두개골을 열었나 보다. 새벽녘엔 쥐떼들이 아이젠을 신고 우르르 우르르륵 내 머리 속을 뛰어다녔다.
공허,
그것은 더럽혀진 허공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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