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빈자일등貧者一燈 2
절마다 燃燈이 넘쳐난다. 의심하지 않기로 한다. 빈자일등의 심정으로 등을 달았으리라. 빈자의 마음으로 불을 켰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등마다 적힌 소원이 너무 소아적이다. 가족 울타리와 유루복을 넘어서지 못한 소원들의 동어반복이 난무한다. 가족건강, 대입합격, 승진기원, 사업번창, 연애성공 등의 문구가 복사한 듯 둥근 연꽃 등에 동일하게 쓰여 있다. 이런 배타적 가족애와 유루복을 넘어선 소원과 기원은 언제쯤 말해질 수 있을까. 그야말로 욕망이 아닌 원력이 언제쯤 우리의 마음에서 우러날 수 있을까. 청빈자의 심정으로 불을 밝혀야 영생하듯 밝음이 이어진다는데, 그런 소아적 소원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앵두꽃 진자리 열매 맺었다. 앵두나무는 학교를 다니지 않아서 문자를 모르고 문자를 몰라서 돈을 모르고 돈을 몰라서 비단 옷을 모르고 비단 옷을 몰라서 의자를 모르고 의자를 몰라서 앉는 법을 모르고 앉는 법을 몰라서 등 돌릴 줄 모르고 칸막이를 모르고 칸막이를 몰라서 옷 입을 줄 모르고 옷 입을 줄 몰라서 외출할 줄 모르고, 학교를 다니지 않아서 문자를 모르고 문자를 몰라서 입을 모르고 입을 몰라서 먹을 줄 모르는 앵두나무, 꽃 진자리 열매 맺었다. 입속의 검은 입은 더더구나 몰라서 여름 깊어지면 뙤약볕 우물가에 내어 걸 빈자일등. 세상에서 가장 고운 문맹의 빈자일등.(2010.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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