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무염無染 1
세상이 온통 '컬러풀'하다. 色의 나라가 절정에 이른 듯하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동쪽부터 서쪽까지, 표면부터 오지까지 색의 나라 아닌 곳이 없고, 색의 지배영역 아닌 곳이 없다. 물든 세상에서 물들지 않은 곳을 찾아 촌사람처럼 두리번거린다. 색의 나라에서 무색의 나라를 그리워하며 기린처럼 마음의 고개를 들어본다. 그러면서 내 몸을 참회하듯 진단해본다. 내 몸은 어느 수위까지 물이 든 것일까. 또한 내 몸은 어느 안쪽까지 색이 배어버린 것일까. 욕조에 맑은 물을 받아놓고 며칠간 몸을 담가본다. 연일 유색이다. 창문을 열어놓고 탈색을 시켜본다. 여전히 진한 빛이다. 어떻게 하면 영혼까지 하얗게 탈색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머릿속까지 말갛게 헹궈낼 수 있을까.
▣ 파란 유리병은 ‘퍽’하며 깨어진다. 깨어진 유리 조각에 어울리지 않는 소리이다. 노란 유리병은 깨어질 때 ‘퍽’하는 소리를 낸다. 높은 별빛 소리를 다독이는 낮은 달빛 소리이다. 빨간 유리병은 ‘퍽’하는 소리를 내며 깨어진다. 그것은 가슴 치는 소리 같기도 하고, 아닌 밤중에 홍두깨가 벌떡 일어나는 소리 같기도 하다. 부슬비에 부슬부슬 부서지는 머나 먼 모래밭, 無染의 자궁에 대한 그리움의 둔탁한 주먹이 퍽! 물든 유리병을 깨뜨렸던 것. 色쓰는 내 영혼을 깨뜨렸던 것.(2010.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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