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여여如如
여여란 변함이 없다는 뜻이다. 늘 한결같다는 뜻이다. 여여의 세계를 떠올리면 거품처럼 일어나던 소란이 불현듯 가라앉는다. 바다의 심층처럼, 지구의 자전과 공전처럼, 매일 찾아오는 아침처럼 세상의 무사함이 모든 걸 '필더링'해주는 것이다. 여여한 세계에 몸을 맞기면, 그지없는 평온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여여한 세계가 내 몸 속에 깃들어 있음을 깨닫게 되면, 나도 세계의 여여함에 무심으로 박자를 맞추게 된다. 오늘 아침 내가 일어난 것도 여여한 것이요, 지금 내가 숨을 쉬고 있는 것도 여여한 것이며, 덥다고 찬물을 찾는 마음도 여여한 것이다. 여여함이 9할 이상인데 왜 인생은 늘 불안정할까. 1할도 안되는 생의 표면적 동요 속에서 하루가 가고, 생이 저무는 것은 억울하지 않은가. 여여함은 존재의 뿌리이자 심층이다. 뿌리를 매만지고 심층에 마음의 주파수를 맞추며 심해처럼 묵묵하고 담담한 생을 열어갈 일이다.
▣가야산 깊은 곳 멍석바위 위에 가부좌를 하고 아랫단전에 마음을 모을 때, 쥐똥지바퀴가 다람쥐 부부에게 아침식사 시간을 알릴 때, 구름을 목에 두른 늙은 소나무가 산안개 자욱 명상에 잠길 때, 주민등록중도 없는 기러기 가족이 조그만 개울가에서 늦잠을 즐길 때, 개똥지바퀴는 가장 깊은 숲 속에 제 집을 짓고, 길 떠나는 다람쥐 부부가 하루분의 김밥을 쌀 때, 문맹의 바람이 내 몸 속에 깃들어 여여함을 모르는 바람이 불 때, 바람에 몸을 맡긴 멍석바위가 큰 산을 넘고 먼 바다를 건너 다시 가아산 깊은 곳에 이르렀을 때,(2010.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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