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
만해를 배우는 시간에, 이 땅의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은 일제히 어려운 사상의 세계로 들어 올려진다. 만해의 대표작 <님의 침묵>엔 색즉시공이요 공즉시색이라는 불교의 철학이 체화되어 있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참 어려운 말을 의심 없이 받아 적고 외우면서 무사히 시험도 통과한 경험을 우리는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나이 들어 되새겨도 이 말의 심층은 쉽게 證得되지 않는다. 있음을 없음이라 말하고, 없음을 있음이라 말하는 역설적 은유의 극단을 따라가기엔 우리의 시야가 너무 좁고 얕다. 그러니 시야를 넓고 깊게 하는 일이 급선무이다. 肉眼이 아닌 心眼을 떠야 하는 것이다.
▣스투디움studium과 푼크툼punctum은 롤랑 바르트의 용어이다. 거칠게 연결하면, 스투디움은 육안의 것이고 푼크툼은 심안의 것이다. 스투디움의 자리에 서서 보면,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고 푼크툼의 자리에 서서 보면 색즉시공 공즉시색보다 더 참말은 세상에 없다. “아아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않았다”는 肉의 결핍과 心의 충족을 거느린 만해의 영탄이다. 육과 심이 따로 놀 때, 몸은 마음에게 헛소리 말라 삿대질 하고 마음은 몸을 향해 짐승 같은 놈이라 비웃음 친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말이 일으키는 허무, 무의미, 덧없음의 물결 앞에서 不二의 관문, 그 아득한 높이를 본다.(2010.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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