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
박경리 선생 묘소 입구 빈 집 뜰에는 홍매화 향기가 자욱했다.
묘소 가는 길
선생은 미륵산 기슭 한려수도가 잘 내려다보이는 양지바른 곳에 아주 편안하게 누워계셨다.
생명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살아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눈물겨운가!
선생의 문학은 몸으로 산 질곡의 근대사, 영혼에 새긴 불멸의 언어이다.
통영항
여황산이 보인다.
"충무시 동호동 눈이 내린다"(김춘수)
여황산아 여황산아,
네가 대낮에
낮달을 안고 누웠구나.
머리칼 다 빠지고
눈도 먹고 코도 먹었구나
동호동 61번지
-김춘수, <충무시>전문
욕지항
"언제 다시 온다는 허튼 맹세도 없이
"
"바다가 새앙쥐 같은 눈을 뜨고 있었다"
봄이 오는 소리의 포말
"울지 말자,
山茶花가 바다로 지고 있었다.
꽃잎 하나로 바다는 가리워지고
바다는 비로소
밝은 날의 제살을 드러내고 있었다."(김춘수, <처용단장>부분)
오는 봄 싣고 너에게로 가리
세 시간을 넘게 달려 우리는 통영시 선착장에 닿았다.
분소식당은 휴업이어서 통영식당에서 도다리 쑥국으로 점심을 먹었다.
욕지도에 가면 잃어버린 세월을 찾을 수 있을까. 결혼 35주년; 많은 사람들이 우리 곁을 떠났고 참 좋은 생명들이 우리를 찾아왔다.
섬마을 아주머니의 참 좋은 표정 뒤의 세월
잔잔한 날보다는,
파도치는 날들이 많았으리라.
작은 일에 고마워하고, 오래 참을 줄 아는 아내가 고맙다.
배삯을 치루면서 그러했듯,
망설임 없이 경노 혜택을 받아도 좋을 만큼 세월의 흔적이 목덜미에 짙다.
욕지 부둣가에서 소주 두 병을 마셨다. 회맛에 반해 이곳에 정착했다는 아줌마에게 두어잔 권했다.
밤은 빛과 소리의 세계이다.
노동의 땀냄새가 그립다.
누군들 돌아가지 않으리.
넘치는 아침 햇살
오리나무 꽃이 제일 먼저 욕지도의 봄을 알렸다.
텅 빈 마을에 봄이 와서 돌맹이에도 풀이파리에도 흐르는 물소리에도 골목 가득 피가 돈다.
"내가 선자리는 모두가 폐허였다"
세르팡지 같은 파도, 손 닿으면 찢어 질듯 우리네 한 생 또한 그런지도 모르겠다.
춘수선생 생가 앞 호떡 장수 아줌마가 통새미 식당이 없어졌다고 일러주었다.
남망산 공원 부근 갯벌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하다. 늙어서야 이리 편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박경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