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낸 한 시절
강현국
서후에서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가 왔다. 우체부가 두고 갔다. 오규원 선생이 보낸 것이다. 가본 적이 없어 서후는 내게 아득한 곳이다. 서후는 아득하지만 선생의 모습은 가깝다. 햇살보다 먼저 찾아 온 아침 바람 곁에서이거나 너무 오래 머물던 여름 햇볕을 밀어낸 산그늘이 거실 깊숙이 찾아 온 때였으리라.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 곁에 내 이름을 쓰고, 우리 집 주소를 적고, 우표를 붙이는 선생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가까이 보인다. 그 손가락이 살아 움직이는 물물같다.
2005년 봄 서후에서 선생은 시집 머리에 이렇게 쓰고 있다.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
이런 물물(物物)과 나란히 앉고 또 나란히 서서
한 시절을 보낸 인간인 나의 기록이다.
한 평론가가 시집 말미에 “물물과 나란히 앉고 또 나란히 서서”에 대한 주석을 꼼꼼하게 달고 있다. 초유의 장문이다. 나란히 앉고 또 나란히 서서 어쩌자는 것인가? 발끝까지 뻗어 내린 이성의 잔뿌리들, 그 철저한 분서갱유 없이, 언어를 갈아엎는 홍위병들의 가혹한 문화혁명 없이, 도대체 인간인 내가 물물과 나란할 수 있기는 있는 건가?
강력 접착제처럼 나를 사로잡는 것은 오직 마지막 일절, 그 평범한 구절이다. 한 시절을 보낸 인간인 나의 기록!;
한 시절;
한 시절이란 말은 무겁다. 누구에게나 한 시절은 무거운 한 시절이다. 가벼운 한 시절은 어디에도 없다. 나란히 앉고 또 나란히 서서 보낸 한 시절이라 하더라도 한 시절은 무겁기 때문에 힘겹다. 나란히 라는 말은 한 시절이란 말의 깃털이다. 깃털은 때로 몸통을 가리고 깃털은 때로 몸통을 가장하기도 하지만 가랑비 한 줄에도 제 몸통을 가리지 못하고, 작은 바람 한 줌에도 그것을 숨기지 못한다.
한 시절이란 말은 가열하다, 되풀이할 수 없으므로 가열하고, 가열하므로 가파르고, 가파르므로 숨이 차다. 비바람 치지 않고 큰물지지 않는 한 시절은 없다. 곧추선 미루나무 가지 끝에도 비바람 숨어 있고 바닥을 드러낸 실개천에도 큰물은 진다. 다르게 말하자면 몰아치는 비바람이 미루나무 가지 끝을 곧추 세우고 도도한 큰물이 실개천 돌멩이를 들어올린다.
무겁고 가열한 선생의 한 시절은 다음에서 보는 바와 같이 힘겹고 가파르다.
온몸을 뜰들의 허공에 아무렇게나 구겨 넣고
한 사내가 하늘의 침묵을 이마에 얹고 서 있다
침묵은 아무 곳에나 잘 얹힌다
침묵은 돌에도 잘 스민다
사내의 이마 위에서 그리고 이마 밑에서
침묵과 허공은 서로 잘 스며서 투명하다
그 위로 잠자리 몇 마리가 좌우로 물살을 나누며
사내 앞까지 와서는 급하게 우회전해 나아간다
그래도 침묵은 좌우로 갈라지지 않고
잎에 닿으면 잎이 되고
가지에 닿으면 가지가 된다
사내는 몸속에 있던 그림자를 밖으로 꺼내
뜰 위에 놓고 말이 없다
그림자에 덮인 침묵은 어둑하게 누워 있고
허공은 사내의 등에서 가파르다
-오규원, 「하늘과 침묵」전문
침묵의 한 시절은 무겁다. 사내의 몸무게에 돌과 잠자리와 나무와 허공, 침묵이 잘 얹히는 물물들의 몸무게를 더해야 하므로 무겁다. 침묵이 잘 얹히지 못하는 물물이란 없다. 달거락 거리는 찻잔에도 초원을 달리는 말발굽에도 침묵은 잘 얹힌다. 아무 곳에나 잘 얹히므로 침묵의 무게는 세계의 무게이다. 해 뜨는 아침부터 해 지는 저녁까지, 뜰들의 허공에서 가파른 허공까지 제 이마에 침묵을 얹고 서 있는 사내의 한 시절은 힘겹다.
침묵은 자물쇠이다. 침묵은 밖으로 열린 창을 빈 틈 없이 잠근다. 당신이 침묵일 때 가로등은 꺼지고 세계로부터 당신은 캄캄하다. 침묵은 세계 내 존재인 당신을 당신의 몸 속에 위리안치시킨다. 제 몸 속에 창을 달고 길을 내는 침묵의 한 시절은 숨막히고, 몸 속 그림자를 밖으로 꺼내 뜰 위에 놓고 말이 없는 사내의 한 시절은 가파른 허공으로 가열하다. 유배의 고독을 살아본 사람만이 천길 허공의 깊이를 안다.
한 시절을 보낸;
다시 또 다른 한 시절이 기다린다 하더라도 보낸 한 시절은 아쉽다. ‘보낸 한 시절’의 아쉬움은 ‘떠나보낸 한 시절’의 그것과 같지 않다. 앞의 아쉬움에는 진행중인 삽과 곡괭이의 열기가 있고 뒤의 아쉬움에는 완료된 저녁답의 서늘함이 있다. 비록 무겁고 가열해서 숨막히는 침묵의 한 시절, 힘든 유배의 날들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멀어져간 세월의 등뒤에서 인간인 나는 언제나 망연자실하다.
진실을 말하건데/해질녘 무릉에서 날아 온 딱새/무릉 등에 지고 날아 온 딱새/자작나무, 아니아니 소나무 가지 사이로/금빛 문고리 입에 물고 날아 온 딱새/사실을 말하건데,/녹슨 자전거를 타고 온 딱새/창궐하는 쑥대밭 뚝길을 지나/우편 배달부가 메고 온 딱새//금빛 관념과 쑥대밭 날 것 사이/바람 속에 둥지 트는 가슴이 붉은 딱새(강현국, 「가슴이 붉은 딱새」전문)
그때 나는 가슴이 붉은 딱새가 살고 있는 무릉의 쑥대밭 뚝길이 보고 싶었다. 무릉의 선생이 보고 싶었었다. 그러나 선생의 무릉, 무릉의 선생은 찾아가 만날 수 없는 가뭇없는 한 시절이 되고 말았다.
내가 선생을 만난 것은 아주 짤막한 도막들에 불과하지만 인간인 내겐 지워지지 않는 한 시절이다.
20년도 더 지났다. 울산에서 김성춘 시인의 소개로 선생을 처음 만났다. 벼 익는 냄새 코 끝에 닿는 교외 식당에서 점심을 함께 했다. 몇몇 사람이 함께 있었다. 대화가 궁하면 논둑에 심어놓은 콩 이파리를 보곤 했던 기억이 난다. 이튿날 오전 10시 공업탑 로터리 2층에 있는 원 다방(?)에서 다시 만났다. 시집 출간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블루진 차림의 선생은 갈색 가방을 메고 있었다. 긴 머리 출렁이는 굵은 물결이 멋져 보였다. “손님, 꼭 예술가 같아요” 종업원 말에 마주 보고 웃었다. 1982년 그해, 나는 선생의 문장사에서 첫 시집 『봄은 가고 또 봄은 가고』를 냈다.
마포 경찰서 부근 선생의 사무실에 들렀다. 조그만 책상을 가리키며 “저자가 앉는 자리예요”하며 교정지를 건네주었다. 저자라는 말이 무척 낯설었다. 늦도록 소주를 함께 마셨다. 시인 한 사람이 같이 있었다. 선생은 철저한 분이었지만 “인간인 나”의 속 모습을 자주 들켰다. 술 때문이었다.
선생이 문득 대구에 오셨다. 80년대 중반이었던 것 같다. 방문목적은 기억에 없다. 한 시인이 동행하고 있었다. 자유시 동인들과 함께 동성로 어느 주점에서 마주앙을 취하도록 마셨다. 비행기 시간에 쫓겨 총총 헤어졌다. 건강을 다치지 않은 마지막 모습이었던가? 아니 또 있다. 그리고 한참 지난 후 조그만 도시 성당 앞에 혼주로 서 있는 선생을 보았다. 입은 양복만큼이나 어색해 보였다. 눈부신 햇살 때문이었을 것이다.
류시원 시인의 신춘문예 시상식 때였으니까 92년인 듯하다. 퍽 힘들어하는 모습이었다. 가느다란 에세 담배를 한 모금씩 빨다 말았다. 앞에 놓인 칵테일은 입에 대다 말았다. 쉬어야겠다며 서둘러 호텔로 갔다. 앞인지 뒤인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인사동 맥주집에서 현대시학 주간과 만난 자리에 나도 끼어있었다. 선생은 자신이 소개한 한 늦깎이 시인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한 두 차례 잡지 일로 전화 통화를 했다. 문자 메시지를 몇 차례 주고받았다. 물론 내가 보낸 문자에 대한 즉각적인 답신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서후의 선생이 보고 싶었다. 선생의 서후가 보고 싶었다.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가 보고 싶었다. “포도익을때찾아뵐수있으면좋겠습니다” 문자를 보냈다. “적당할때얼굴한번봅시다/날씨가너무더워서힘들지요?/건강에유의하세요”. 7월 27일 오후 3시1분 선생이 보내 온 문자이다.
한 시절을 보낸 인간인 나;
오규원을 읽다가
오규원 선생의 전화를 받았다
참 우연한 일도 많지
바깥 세상 훔치려다 들킨 창문이 덜컹 내려앉는다
하늘이 하 맑아서
그대 떠난 하얀 길이 잘 보인다 라는 표현은 구식이다
(중략)
다시
오규원을 읽다가
오규원 선생의 전화를 받았다
참 우연한 일도 많지
바깥 세상 훔치려다 들킨 창문이 덜컹하는 표현은 신식이 아니다
덜컹 덜컹은 아무 것도 훔치지 못해 덜컹하므로
덜컹 덜컹은 아무 것도 도둑맞지 못해 덜컹덜컹하므로
-강현국,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부분
짧은 도막의 만남은 도막난 만남이어서 아쉽다. 따지고 보면 도막나지 않은 만남이 어디 있으랴. 도막난 만남에 기대어 위의 시를 썼다. 지금 보니 군데군데 선생 시의 초기 화법을 훔쳐온 것이 눈에 잘 뜨인다.
선생의 작품 앞에서 내 시는 왜 이렇듯 촌스러울까. “구식이다” “신식이 아니다”하는 구절은 내 촌스러움에 대한 자괴의 고백으로 읽힌다.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 이런 물물(物物)과 나란히 앉고 또 나란히 서지 못한 채 한 시절을 보낸 인간인 나의 기록이기 때문일 터이다.
새가 언덕에서 지나가는 구름을 자주 보는 겨울입니다
텅 빈 밭에는 햇볕이 흙에 달라붙고
논에는 고인 물에 하늘이 버려져 있는 겨울입니다
마을 앞은 여름에 무너진 자리가 한 번 더 무너지고
엉겅퀴가 무리 지어 서 있던 자리에는 바람만 남고
어쩌다가 밖에 나온 사람도 길에 있지 않고
버려진 모자 하나 길 위에 얼고 있는 겨울입니다
-오규원, 「모자와 겨울」전문
선생의 시는 얼마나 모던한가! 새와 햇볕과 하늘과 바람과 모자 곁에 나란히 선 선생의 모습에서 나는 한 견인주의자의 고독을 본다. 왜 행과 행 사이를 한 간씩 띄우고 있을까? 아마도 행간의 여백은 텅 빈 밭을 지나가는 겨울바람, 그 쓸쓸함의 통로일 것이다. 김준오 선생께 라는 부제로 미루어볼 때 그 여백은 한 지기의 느닷없는 죽음으로 말미암은 선생의 텅 빈 내면풍경일 것이다.
한 시절을 보낸 인간인 나의 기록;
기록이란 말은 요도에 박힌 결석처럼 아프다. 기록이란 말은 영구불변하는 금강석 같다. 기록이란 소멸의 항체이다. 기록한다는 것은 생의 의지이다. 그러나 기록에 대한 기록한 사람의 지분은 아주 적다. 금강석은 단단해서 시간을 비끼고, 그 빛은 찬란해서 천지를 비추나 한 시절의 주인은 이미 그곳에 없다. 모자 하나 남겨 두고 그 길을 떠난 김준오 선생처럼, 아니 그 길 위에 모자 하나로 남아 있는 김준오 선생처럼.
그러고 보니 한 시절을 보낸 인간인 나의 기록은 오직 물물들의 것이다.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가 빛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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