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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의 빈터

노래, 그 쓸쓸함의 양식

by 고요의 남쪽 2009. 8. 21.

노래, 그 쓸쓸함의 양식


                                                                             그 날 창밖엔 바람이 불었던가

  외로움이라고 쓰려다가 쓸쓸함이라고 고쳐 쓴다. 외로움이란 말을 따라가 보면 갈 곳 없는 한 아이의 해 저문 운동장이 거기 있다. 손 시렵다. 외로움이라고 쓰려다가 쓸쓸함이라고 고쳐 쓴다. 쓸쓸함이란 말끝에는 노을에 부대끼는 갈대밭 언덕이 울음을 참고 있다. 배고프다. 갈대밭 언덕엔 바람이 살고 날 저문 운동장엔 적막이 산다. 무릇 쓸쓸함이란 바람 부는 적막, 그 날 창밖엔 바람이 불었던가. 쓸쓸함은 막무가내여서 내 노래 또한 막무가내였다.

  정태춘을 부르고 김광석을 불렀다. 한 차례 쉬었다가 김정호를 불렀다. <떠나가는 배>와 함께 길 떠난 나는 <사랑했지만>,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과 같이 한달음으로, 바람 부는 적막, 그 언덕에 올랐다. 죽엽청주가 시바스리걸로 바뀌었다. 커턴 콜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나는 스스로 <빗속을 둘이서>를 부르며 그 언덕을 내려왔다. '해 뜨는 동해에서 해 지는 서해까지/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벌판'과 같은 가열한 노랫말을 가진, '우리 어찌 가난하리요/우리 어찌 주저하리요'에서 클라이맥스를 이루는 <광야에서>를 더 부르려다가 마이크 상태가 좋지 않아 그만 두었다.

  지난 시월 어느 날 중국집 2층에서였다. 구석본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쓸쓸함에 관해서』의 출판 기념회자리에서였다.


쓸쓸함에 관해서

“그대가 남긴 쓸쓸하다는 말이/어느 날, 그대의 집이 되어 다가섰습니다/푸른 대문을 열고 쓸쓸함 속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추상화 같은 노란 모래가 펼쳐졌습니다/그대는 보이지 않고/햇살이 살금살금 내려 쪼이며/모래 한 알마다 그림자를 만들어 가고 있었습니다/그대의 생애가 그림자로/모래 밑에 조심스럽게 누워 있었습니다/그대 찾아가기 위해 모래를 파헤치면/그대의 생애는 더 깊이 묻혀들고/뻥 뚫린 모래 웅덩이에서/어둠의 뿌리들이 이리저리 얽히더니만/순식간에 거대한 나무로 불끈 솟았습니다/속절없이 나무의 그림자가 되어 섰습니다/나뭇잎에 햇살이 빛나는가 하더니만 잎새 하나/어둡게 내리고 있었습니다/그대의 생애가 잎새로 지는 것을/비로소 보았습니다(구석본)”


  노란 모래밭은 속절없는 세계를 내다보는 창이다. 쓸쓸하다는 말이 지은 집, 그대의 생애가 속절없이 누워 있는 집, 뻥 뚫린 웅덩이가 위태로운 집, 어둠의 뿌리들이 불끈, 거대한 나무 그림자로 속절없이 솟구치는 집, 모질게 질긴 인연의 슬픈 집. 잠시 빛나는 햇살의 힘으로 속절없이 지는 잎새 하나, 그 날 창밖엔 어둠이 깊었던가. 속절없이.

  

구병산 이마 위에 걸린 저녁 노을

  “그러나 노래할 때, 마이크를 턱 아래 두고 노래하며 몸을 떨 때, 몸 떨며 노래 부르면서도 노래의 어느 한 소절 때문에 쓸쓸한 몸이 될 때. 가사 한 소절의 절박함이 몸에 그득할 때, 노래 부르며 몸 떠는 이의 쓸쓸한 시간이 끝날 때, 나는 본다. 노래가 끝나야 침묵이 온다는 것을, 비로소 우리가 바라는 침묵을, 우리가 원하는 침묵을, 우리가 찾았거나 바랐을 침묵이 온다는 것을, 당신 안에 웅크린 당신을 호명하듯, 크게 노래 부르고 나면 몸에 베이는 침묵을 여러 번 보았다. 구병산 이마 위에 걸린 저녁 노을을 보러갔던 지난 가을, 김광석의 노래를 애절하게 부르며 마음 한켠 아파할 때, 나는 Ne Me Quitte Pas를 부른 니나 시몬의 암갈색 우울을 보았다. 어떤 노래는 부르는 사람의 입에서 새가 되어 날아가고 어떤 노래는 부르는 사람의 생으로 스민다. 내게 가까이 혹은 아주 멀리서 노래하는 선생의 모습을 통해. 그 옛날 불같은 성격에 여러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거나 혹독한 비판을 하시던 모습과 왜 얼마나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는가를 알 수 있다. 바로 노래 부르기 때문이다. 노래를 부르는 것, 시인은 무언가 노래 부르는 자 아닌가. 제 안이든 밖이든 노래 부르기 위해 태어났으니 부르르 몸 떨며 노랠 부를 수밖에.(김정용)”


  우울은 암갈색이다. 구병산 이마 위에 걸린 저녁 노을이 다 익어서 붉다가 제 마음에 겨워 어두워지듯 나이 든 우울은 암갈색이다. 머리끝이 하얀 쓸쓸함이 그 언덕을 내려와 저무는 개울가에 발 담글 때 쓸쓸함은 암갈색 우울이 되어 깊게 흐른다. 암갈색 우울로 몸 바뀐 쓸쓸함, 내가 만난 침묵은 그런 것이다.


코트 자락에 깊숙이 묻혀 있는 우수

  “나는 이 글의 서두에서 그를 일컬어, <시 밖에서 더 시인 같은 사람>이라고 말했었다. 그 말의 안쪽을 뒤집어 보면 그는 천성적인 시인이라는 말이 될 수도 있겠다. 나는 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 생맥주 때문이거나, <보고 싶은 얼굴>이나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랑>같은 패티 김의 노래 때문인지 모른다. 노래에 푹 빠져서, 노래에 섬세한 감정을 실어 가는, 그의 은밀한 마음의 결을 잠깐만 엿보면 알 수 있다. 어떤 질긴 끈이 있어, 시인의 발을 땅과 허공 사이에 떠 있게 한다는 것을 금방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강현국 시인. 그는 이 시대를 사는 몇 안 되는 로맨티스트이고, 때로 은둔자이며, 부조리한 사회를 향해 불끈 주먹을 쥘 수 있는 반항아이다. 아니, 카키색 바바리 코트 자락에 깊숙이 묻혀 있는 우수를 빼놓고 그를 말할 수 없다. 그 우수의 근원은, 보기 싫은 사람은 절대 못 보는 성격 때문일 수도 있고, 좀처럼 똑바로 걸어가지 못하는 거지같은 세상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보기 드문 로맨티스트, 그리고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지 못하는 그의 성격은 내가, 그를 감히, 선천적인 시인이라 말할 수 있게 만드는 이유이다.(송종규)”


  우수수 나뭇잎 진다. 나는 한 때 햇볕 잘 드는 허공 위에 젖은 양말 여러 켤레 얹어둔 적 있다. 쓸쓸함의 나뭇잎은 우울의 깊은 강을 건너야 비로소 코트 자락에 깊숙이 묻혀 있는 우수의 뜨락에 이른다. 푸른 잎이 우수수 마른 낙엽으로 떨어지기까지 내 사는 뒷산 굴참나무는 얼마나 사무치는 맨발의 시간을 살았겠는가. 우수에 젖은 눈으로 바라보면 패티 김의 오만한 무대 매너가 퍽 쓸쓸해 보인다.


너무나 좋은 혼자

  “교수님, 죽어도 링 위에서 죽으세요! 이렇게 말하는 건 결례가 될까? 아니다, 결례가 되어도 해야겠다. 교수님, 언제 저랑 한 판 붙을래요? 인정 사정없이 히히히......에구 이야기를 하다 보니 천방지축 벼라 별 얘기를 다했다. 나는 늘 이 모양이다. 아무튼 올 여름엔 <임곡>엘 꼭 한번 가보고 싶다. 그래서 제대로 서향 맛을 느끼고 싶다. 허심재 앞 <성도 강현자의 묘>근처 호두나무에서 귀청 먹먹하도록 말매미가 울면, 시인은 세상 의욕 욕망 하나도 없어져 홀로 첼로를 듣겠지. 느리게, 느리고 무겁게......창 밖 포플러 나무 한 그루가 빈 하늘 허공에다 대고 첼로를 켜는 것 시인 혼자서만 바라보고 있겠지. 바이올린은 가벼워, 촐랑거려서 싫어......첼로가 좋아. 세상 억장 다 무너져 참 나른한 느낌! 참 슬픈 느낌! 시인은 혼자서만 즐기고 있겠지. 그러다가 유행가 한 곡쯤 낮게, 허밍으로 부르시겠지. <너의 맘 깊은 곳에/하고 싶은 말 있으면......> 아아, 너무나 좋은 혼자!(유홍준)“


  흔히 말하는, 내 십팔번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촐랑거리는 바이올린을 가을 악기라고 말할 때 당신은 이미 마른나무 가지에 가슴 다친 사람, ‘너의 맘 깊은 곳에/하고 싶은 말’ 다 무너져 참 슬픈 느낌을 참 쓸쓸한 허밍으로 바꾼 것이다. 서산 미루나무가 빈 하늘 허공에 첼로를 켤 때, 나는 본다. 아아, 너무나 좋은 혼자 배불리 먹는 저 쓸쓸함의 양식.


물음표와 느낌표가 동시에 나타나는 ‘레미미’의 음정

  “맨 처음 내가 들은 선생님의 목소리는 “이-시-인”이었다. 그 당시에는 시인이라는 내 존재의 확인도 낯선 것이었지만, 더욱 낯선 것은 선생님의 목소리였다. “이시인”, 이 세 음절은 “레미미‘ 정도의 음정이었고, 마치 어딘가에서 힘 안들이고 끌고 올라오는 것처럼 느리게 발음했는데, 그 음절과 음절 사이는 끊어지지 않았다. 그리고는 ”이시인“이라는 그 말과 말 사이에는 약간의 침묵이 있었다. 그러나 그 침묵은 뚝 단절되는 가파른 이미지가 아니라 허공으로 살짝 띄어 올려지는, 풍선처럼 가볍고 부드러운 그런 것이었다. 선생님의 그런 목소리는 그 뒤 내가 받은 처음 느낌에서 한번도 벗어난 적이 없다. 선생님의 목소리는, 비유적으로 말한다면, 깊은 곳에서 올라왔으나 꿰맨 흔적이 없이 매끄럽다. 선생님이 심리적으로 매우 힘들었던 시간에 통화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에도 독감에 걸린 것처럼 잠기고 변해 있었으나, 여전히 내가 가지고 있는 최초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않는 목소리였다. 첫 통화 후 십년이 지난 지금도 선생님은 “이시인”하고, 물음표와 느낌표가 동시에 나타나는 ‘레미미’의 음정으로 나를 부르고, 선생님이 발음한 그 말은 언제나 허공에 가볍게 떠있다.(이원) “


  아버지도 어머니도 음치이셨다. 당신들의 찬송가는 모든 곡조가 한결같으셨다. 당연히 나도 음치이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내뿐이다. 김연준이 곡을 만든 비가를 비장하게 부르고 났을 때, 강교수 직업 잘 못 선택했어 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꿰맨 흔적 없는 목소리에 속은 것이다. 물음표와 느낌표가 동시에 나타나는 ‘레미미’의 음정은 반음 처리가 잘못 된 불안한 문장이다.


쓸쓸한 풍경

한 손엔 허공/한 손엔 비닐봉지, 땅에 닿을 듯//허공엔 뙤약볕/봉지 속엔 검은 콩, 땅에 닿을 듯//이바 형구기 이거 밥에 나먹어//백 미러 속에 할머니 있고/꼬불꼬불 기어오는 논둑길 있고(강현국)”


  백 미러 속 그 할머니 세상 떠나셨다. 당신네 스틸 카메라에 찍힌 노래하는 내 동영상이 돌아보니 부끄럽다. 백 미러 속 그 할머니 논둑길 떠나셨다. 노래는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가. 꼬불꼬불 논둑길은 꼬불꼬불 기어서 어디로 갔나. 백 미러 속엔 허공만 가득한데, ‘세월은 가도 그 눈동자 입술’ 허공에 가득한데 우리 어찌 이 밤을 잠들 수 있나.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찔레꽃 필 때까지 그대는 무얼 먹고사는가. 노래여, 배고픈 나의 노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