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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의 빈터

파리와 더불어

by 고요의 남쪽 2009. 8. 8.

파리와 더불어 

 

  후배 교수가 쓴 책의 머리에서 완당의 ‘유재(留齋)’를 만났다. 내게도 마음에 닿았다. 오늘 이 글은 제목부터 정해야 잘 쓰여질 듯한데 마땅한 생각이 떠오르질 않아 애태우고 있다. 파리 한 마리가 자꾸 성가시게 한다. 빈방에서 혼자 오래 심심했었나 보다. 봄비 내린다. 파리 한 마리가 봄비 속으로 떠나는 나를 어지럽힌다. 책상 위에는 두 장의 사진이 각각 흑백과 칼라로 놓여 있다. 막내아우가 찍어 매일로 보내 온 사진을 컴퓨터를 잘하는 옆방 교수가 인쇄해 준 것이다. 한 장은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이 집의 사진이고 다른 한 장은 아버지 어머니께서 오래 오래 주무시는 저 집의 사진이다. 파리 한 마리가 이 집과 저 집 사이를 날아다닌다. 저 집에서 이 집으로 옮겨 안기도 하고 이 집에서 쫓겨나면 저 집으로 도망가기도 한다. 삶과 죽음을 무시로 들락거린다. 파리채를 들면 불빛 밖으로 가뭇없이 사라졌다가 위험이 사라지면 번개같이 나타나곤 한다. 끈질긴 놈이다. 조수미가 부른 한 오백년은 절창이다. 정을 두고 몸만 가니 눈물나네 할 때의 그 정처럼 끈질긴 놈이다. 제목부터 정해야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아 ‘유재’와 ‘빈 집’ 사이를 가늠해 본다. 빗소리도 멎고 파리도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갔을까? 앞의 것은 앞의 것대로 뒤의 것은 뒤의 것대로 속이 들여다보여 마음내키지 않는다. 성가시게 달려드는 파리의 행방이 궁금할 수도 있구나. 끈질긴 놈, 그 놈, 파리와 더불어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는다.


天地

  파리 한 마리가 다시 이 집과 저 집 사이를 날아다닌다. 하늘과 땅 사이를 날아다닌다. 4월 22일 19시 36분, 이 집은 밤이고, 4월 23일 17시 06분, 저 집은 낮이다. 이 집은 깨어있어 밤새도록 쓸쓸하고 저 집은 잠이 들어 종일토록 평안하다. 이 집은 창이 있고 저 집은 창이 없는 것이 가장 큰 차이이다. 이 집은 떠나가는 사람들의 정거장 같고 저 집은 돌아오는 사람들의 고향집 같다.

  

<허심제 사진>


  느티나무는 달빛을 향해 안타깝고 달빛은 가녀린 느티나무를 향해 안쓰럽다. 달과 나무 사이의 두터운 숲과 무거운 능선도 달과 나무 사이, 닿을 수 없는 목마름을 다스리지 못한다. 서쪽을 멀리 내다보는 창문은 이미 그것을 알아챘다는 눈치다. 느티나무도 능선도 능선 위의 달도, 다시 못 올 어디론가 떠날 차표를 예매해 놓고 뒤척이는 사람들 같다. 외로움에 겨워 허공에 붇박힌 달과 나무의 전생을 창문은 이미 알아챘다는 눈치다. 이 집의 이름은 虛心齊이다.


<묘소 사진>


  그렇게 하고 싶어 오래 애태웠던 선영을 정비했다. 화강암으로 새 집을 지어 아버지 어머니를 편하게 모셨다. 숙원을 이루었으니 어찌 흐뭇하지 않겠는가. 첫 월급을 받아 빨간색 내의를 사들였을 때의 기분보다 훨씬 더 개운했다. 영원의 돌로 당신을 영원히 묶어두고 싶은 산 자의 욕심, 무덤이란 오직 그런 것이다. 서울 사는 아우가 이런 메모를 보내왔다.

 

어머니 돌아가시기 두 세 달 전에 “자주 오너라. 보고싶다." 고 하시던 말씀이 늘 귓가에 또 맘속에 맴도는군요. 속으로는 자식들이 오는 게 반가우면서도, 오가는 길 위험하고 힘든다고 명절에도 전화하면 ”복잡한데 오지말고 맛있는 거 해먹고 쉬어라." 하곤 하셨었는데 가시기전 얼마나 외롭고 새끼들이 그리우셨으면 자주 오라고 하셨을까 하는 생각만 하면 괴롭습니다. 묘비명에 성경구절과 조화되게 새길 수 있다면 후손들에게도 여러 가지로 의미 있는 한마디가 될 듯 한 생각에 적어 보았습니다. 현수


 묘비명에 우리는 이렇게 적었다. 하나님 목소리와 어머니 목소리를 나란히 새겼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느니라...

 

자주 오너라. 보고싶다.


잊어버릴만하면 다시 그 놈의 파리 한 마리가 잉잉거린다. 이 집과 저 집 사이, ‘허심제’와 ‘자주 오너라. 보고싶다.’ 는 천지 차이라는 듯 열린 하늘과 닫힌 땅 사이를 잉잉거린다. “멀리 갔다가 혼자서 돌아오는 메아리처럼”(김춘수, 「處暑 지나고」부분).


石波

  춘수 선생께서 타계하셨다. 2003년 어느 겨울 저녁 선생께 전화를 드렸었다. “...선생님 저 호 하나 지어주세요...” “응, 생각해 보지” 짐작보다 빨리 선생께서 전화를 주셨다. “...石波 어때? 돌 석 물결 파, 아니면 素石 어떤고? 소월할 때 소하고 돌석...” “선생님 저 석파 하겠습니다” “마음에 안 들면 다시 생각해 보고...” “선생님 석파가 참 좋습니다” “응 그래, 석파, 소리가 참 좋아요, 언밸런스의 밸런스 같은 것도 있고...”

  하늘같은 은사로부터 언감생심 아호를 얻게 되어 기뻤다. 세월이었다. 30년 전 그 때 시인 추천을 받고 싶어 선생님 대문 초인종을 누르던 때와 앉아서 그것도 전화로 아호를 받던 날의 차이, 생땀 나던 한낮과 느긋한 초저녁의 차이, 세월이었다. “첫눈의 알리바이? 이건 김수영 냄새도 나고...”하시며 더 이상 원고를 보려하지 않으시던 30년 전의 선생님과 “마음에 안 들면 다시 생각해 보고...”하시던 선생님은 딴 분이셨다.

  쓸쓸했다. 세월이 쓸쓸했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쓸쓸했다. 왜 자식 같은 새까만 제자에게 이것 좋으니 해라하고 명령(?)하지 못하셨을까! 어쩔 수 없는 한 시인의 인간적 노약이 쓸쓸했다. 그 쓸쓸함으로부터 풀려나고 싶었다. 그 쓸쓸하심을 풀어드리고 싶었다. 『시와반시』2005년 봄호는 전면을 선생님 추모 특집으로 꾸미기로 했다. 세월 속에 바래지 않는 선생 문학의 저택을 지어 드리고 싶었다. 이렇게 꾸몄다.


화보; 대여 김춘수 시인 지상 문학관

기획1; 김춘수 문학의 주춧돌

기획2; 김춘수 시인의 안채와 사랑채

기획3; 우리 시대의 큰 시인 대여 김춘수 선생의 시와 삶, 그리고 산문


  짧은 노력과 모자라는 식견으로 어떻게 산 높고 골 깊은 선생 문학의 전모를 갈무리할 수 있었으랴. 그러나 충무시 동호동에서부터 광주 공원묘지까지, 화장실 슬리퍼에서 베었을 때 바르는 구급약에 이르기까지 손닿고 발 닫는 데까지 찾아 다녔다. 임종하신 병원이 멀리 보이는 선생의 산보 길을 찾았을 때 제일 많이 가슴이 아팠다.


  어떤 늙은이가 내 뒤를 바짝 달라붙는다. 돌아보니 조막만한 다 으그러진 내 그림자다. 늦여름 지는 해가 혼신의 힘을 다해 뒤에서 받쳐 주고 있다.(「산보길」전문)


  세월이 쓸쓸했다. 되돌아 생각해 보니 선생은 소리와 빛을 내게 선물하고 싶으셨던 게 아닐까? 석파는 소리이고 소석은 빛이다. 석파는 리듬이고 소석은 이미지이다. 소리에도 빛에도 돌이 들어있다. 돌의 리듬과 돌의 이미지, 소리의 돌과 빛의 돌, 하나를 택해야 했음으로 나는 소리를 가졌다. 소석은 기억 속에 정성스럽게 챙겨 두었다. 내가 화강암으로 떠나가신 아버지 어머니를 영원히 묶어두고 싶었던 것처럼 선생께서도 돌로 오래 오래 한 제자를 묶어두고 싶으셨던 것일까? 아닐 것이다. 이런 상상은 선생의 그늘에 오래 묶이고 싶은 내 마음이 시킨 짓일 터이다. 


虛心一打

  쓸쓸했다. 내 어머니 떠나시고, 눈물 마르기 전 선생님 떠나시고 세월이 쓸쓸했다. 허기진 배는 무엇으로라도 채워야 하느니. 왕성한 식욕 없이 도저한 쓸쓸함을 먹어치울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나는 요즈음 골프에 미쳤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저 놈의 파리도 알고 있을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 골프 채널 털어놓고 스트레칭과 아령으로 몸을 푼다. 소공원 풀밭에 가서 30분 가량 어프로치 연습을 하고 연습장 옥상에 올라 또 30분 정도 버팅 연습을 한다. 드라이브 레인지에 내려와 90분간 60。 웨지 샷부터 드라이브까지 쉼 없이 땀 흘리고 집에 돌아오면 세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먹고사는 일에 나머지 시간을 할애하고 다시 골프 채널 켜놓고 잠을 청한다. 이만하면 미친 것 아닌가. 골프와 떨어져 사는 날은 드물다. 지금처럼 허심제로 밀린 글 쓰러 왔을 때가 아니면 출장, 혹은 아플 때가 고작이다. 가정을 버린 지 오래 라는 내 말에 아내는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니 이만하면 미친 것 아닌가.

  골프에 빠져들게 한 외우 운조(雲朝)선생으로부터 골프 치자는 연락이 왔다. 당연히 설렌다. 수 년 전이었다. 직장 일로 대기업의 대구 책임자였던 그를 처음 만나게 되었었다. 처음 만난 우리는 조심스럽게 인사를 나누었었고, 그는 정장을 했었고 나는 속으로 내 캐주얼 복장을 후회했었고, 사무적인 이야기를 주고받았었고, 식사 때가 되어 내가 가끔 가는 일식 집으로 자리를 옮겼었고, 양주 두 병 마셨었고, 의기투합했었고, 노래방에 갔었고...... 그와 친해지고 싶어 골프를 시작했다.

  서울로 직장을 옮겨 떠나는 날도 그는 대구에서의 마지막 라운딩을 나와 했고 서울로 옮겨 간 뒤에도 그는 1년에 꼭 한 차례씩은 골프치자고 연락을 한다. 그 날 싱글 골퍼인 운조는 74타를 쳤고 나는86타를 쳤다. 운조의 드라이브 거리는 지난해보다 20야드는 족히 늘어 있었고 아이언은 한결 정교해져 있었다. 놀라왔다. 그와 겨루어보겠다는 생각은 황당한 야심이었다. 실력도 실력이려니와 주량에 있어 턱없이 모자라는 내가 운조와 새벽녘까지 대작을 했으니 티샷부터 망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핑계일 것이다. (골프가 잘 안 되는 데 대한 핑계는 대략 365가지에 이른다고 한다. 그 중에서 가장 압권이 “오늘은 이상하게 안되네”라고 한다)

   골프는 수행과 같다는 것이 요즈음의 내 생각이다. 침묵과 집중을 통해 유연함과 자신감에 이르는, 유연함과 자신감을 통해 침묵과 집중에 이르는 것이 그와 같고 무엇보다 마음을 비워야 잘 칠 수 있는 것이 수행의 요체에 닿아 있다. 그러므로 허심일타는 고수의 경지라 할 수 있다. 허심하지 못하므로 헤드 엎을 하고, 허심하지 못하므로 팔로 힘껏 쳐서 뒷땅을 치거나 생크를 낸다. 골프가 인생과 같다는 흔한 말도 욕심을 경계하는 것의 소중함을 골프가 일깨워주기 때문일 것이다. 멎었던 봄 비 다시 내리고 다시 파리가 찾아와 시비를 건다. 시비에 휘말려 흐름을 놓친다. 수행이 덜 되었다는 증거이다.

  육십이 불원한 우리는 그 날 집씨!, 택씨! 하며 웃었다. 집시와 택시는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매너 없는 골퍼들을 향해 사용하는 도우미들의 은어라고 한다. 그린 위에서 집어야 할 공을 집지 않고 진행을 방해할 때 집씨(집어라 씨**아!), 7번 아이언을 쳐야할 거리를 피칭 왯지로 치겠다며 자신의 비거리를 과신할 때 택씨(택도 없다 씨**아!)라고 한다며 애들처럼 웃었다. 그 웃음 속에는 무시로 너구리가 기어다녔고 발가벗은 공주님이 수시로 출몰했다. 그 날 집씨와 택씨는 이 풍진 세상을 향한 시니시즘으로 내겐 읽혔다. 가만 가만 손가락을 오그려 파리를 퉁긴다. 또 허탕이다. 택씨! 내가 파리를 웃겼다.

  기억 속의 흰 돌을 끄집어내어 운조의 친구에게 주었다. 그러고 싶었다. 아깝지 않겠다고 판단되었다. 운조의 죽마이니까. 해운업을 하는 그는 나이와 하는 일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천진난만했다. 버디 버팅을 아깝게 놓쳐 운조의 발목을 놓친 것을 애통해 할 때의 그는 한 회사의 책임자가 아닌 초등학교 아이였던 것; 소석! 素자는 화이트가 아니라 이노선트예요, 이노선트! 아호를 갖게 된 소석은 뜻밖의 선물을 한 아름 받은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그는 내게 몇 번이고 고맙다고 했지만 선생의 뜻을 빛보게 해준 그가 오히려 고마웠다.


留齋

  유홍준에 의하면,(완당평전2, 학고재, 434-5 참조) 완당이 유배지 제주에서 제자인 남병길에게 써 준 현판 유재의 풀이 글은 이렇다.


留不盡之巧以還造化 기교를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조화(造化, 자연)로 돌아가게 하고

留不盡之祿以還朝廷 녹봉을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조정으로 돌아가게 하고

留不盡之財以還百姓 재물을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백성에게 돌아가게 하고

留不盡之福以還子孫 내 복을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자손에게 돌아가게 한다.


  유재의 뜻풀이를 보면 사람의 가슴을 울리는 충언의 일격이 있다고 말 한 뒤 『완당평전』의 저자는 “그런 남김의 정신으로 인생을 살고 예술에 임한다면 그것은 가히 도(道)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배객 완당은 이렇게 인생과 예술에 달관해가고 있었다.”고 적고 있다. 허심을 지나 무심에 이르는 도의 경지는 둥글다. 나는 둥글지 못해 이 끈질긴 파리 한 마리로부터 괴롭힘을 당한다. 파리채를 집으려다 귀찮아서 그만 두었다.

  정현종은 이렇게 노래한다.


내 그지없이 사랑하느니

풀 뜯고 있는 소들

풀 뜯고 있는 말들의

그 굽은 곡선!


생명의 모습

그 곡선

평화의 노다지

그 곡선


왜 그렇게 못 견디게

좋을까

그 굽은 곡선!

       -정현종, 「그 굽은 곡선」전문     


  지평선은 아름답다. 지평선을 뜯고 있는 소와 말들의 지순한 풍경은 낙원의 한때이다. 「그 굽은 곡선」을 바라보는 그대의 시간은 지금 몇 시인가. 한낮인가, 아니면 스산한 황혼인가. 컴퓨터를 두드려 증권시장을 쏘다닐 때, 집씨! 그 가파른 한낮은 생명의 모습이 아니다. 반목과 질시, 혹은 욕망의  헛배들로 숨가쁠 때, 택씨! 그 험준함의 끝간데 평화의 노다지는 있지 않다. 「왜 그렇게 못 견디게/좋을까」, 잔디밭을 달리는 아이들의 굴렁쇠, 이삭 줍는 농부의 굽은 허리, 가지 끝에 매달린 휘영청 보름달, 바람과 햇살의 친구인 붉은 수수밭의 그 굽은 곡선!


  다시 그 놈의 파리 한 마리가 이 집과 저 집 사이를 쫓아다닌다. 허공엔 먹을 것이 없다는 듯, 앉을 데가 없다는 듯 내 콧등을 향해 무엄하게도 집씨! 택씨! 돌진하기도 한다. 지독한 놈이다. 지독하게 배고프고 지독하게 심심한 이 놈의 파리는 직선이지만 지독하게 배고프고 지독하게 심심한 파리와 더불어는 그 굽은 곡선이다.  

  그러고 보니 이 집은 직선이고 저 집은 곡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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