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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의 빈터

하얀 고무신

by 고요의 남쪽 2009. 7. 28.

하얀 고무신


                                                                                   

  2004년 8월 6일 금요일 해질 무렵 어머니는 서둘러 떠나셨다. 머물 힘이 더 이상 없으신 듯, 이제 갈 때가 되셨다는 듯, 가지 않으면 안되시겠다는 듯, 여기 너무 오래 머무르셨다는 듯, 어서 오라고 누가 애타게 부르는 듯, 갈 길이 머신 듯, 저물기 전에 그곳에 닿아야 하신다는 듯, 그곳에 젖줄 아기 울부짖고 있는 듯, 거기 멍석 위에 널린 곡식 비 맞고 있는 듯, 거기 아궁이에 지핀 불 타나오고 있는 듯, 거기 용해빠진 내 새끼 두들겨 맞고 있는 듯 종종걸음으로, 엄마 엄마 불러도 거들떠보지도 않으시고, 미안하구나 얘들아, 너무 애먹이고 가는구나, 힘든 날 많았지만 기쁜 날도 있었지, 잘 있거라 이 사람들아, 한 마디 말씀도 없이, 지팡이와 휠체어가 필요 없는 곳으로, 소화제와 진통제와 물파스가 필요 없는 곳으로, 텅 빈 날의 외로움과 텅 빈 날의 그리움과 텅 빈 날의 기다림이 필요 없는 그곳으로, 가위눌린 고독, 캄캄한 적막강산 아예 없는 그곳으로, 날개옷 입고 훨훨 날아서, 흰 구름 타고 둥둥 날아서, 은하수 건너 먼 나라로, 내가 갈 수 없는 아주 먼 나라로, 뒤돌아보지 않으시고 19시 50분 가엾은 내 어머니 소리 없이 떠나셨다.

  

캐딜락과 꽃가마

  캐딜락에서 내리신 어머니의 시신은 , 꽃가마 타고 당신이 세우신 예배당 뜰에 잠시 머무셨다. 유택에 들기 전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누기 위해. 88년 동안이나 쓰셔서, 비바람 너무 많이 드나들어서 성한 곳 하나 없이 부서질 대로 부서지고 망가질 대로 망가진 싸늘한 육신의 집, 그 집의 소멸을 추모하기 위해, 그 집의 부활을 기도하기 위해 검은 옷 입고 사람들 모였다. 성한 곳 하나 없이 부서지고 망가진 그 집을 드나들며 한결같이 아끼고, 아침저녁 걱정하고, 내 집처럼 지켜준 고마운 사람들 한 자리에 모였다.


  저희 어머니이신 서차례 권사님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88년 동안 머무시던 이 땅을 떠나시는 길에 힘이 되어주시고 친구가 되어주시기 위해 이 자리에 함께 하고 계신 여러분,

  나아주시고 길러주신 어머니를 떠나보내야 하는 저희 유가족들의 애통한 마음을 위로해 주시기 위해 여기 동참하고 계신 여러분,

  오늘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나시는 서차례 권사님을, 서차례 권사님과 함께 했던 날들을 오래 오래 가슴에 새기기 위해 머리 숙이고 계신 여러분,

  대단히 고맙습니다. 오늘의 고마움 잊지 않고 옳고 바르게 그리고 열심히 살겠습니다. 저희 어머님의 유지를 받들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고 여러분 보시기에 자랑스러운 서차례 권사님의 자녀들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 자리가 있기까지 정성을 다해주신 교회관계자 여러분, 특히 투병에서 임종까지 고인의 손발이 되어주신 고향 교회 이범황 전도사님, 피를 나누어 가진 일가친척 여러분, 아침저녁 살을 맞대고 체온을 나누어 가지셨던 마을 주민 여러분 오늘의 고마움 잊지 않겠습니다. 히말라야에 사는 사람들은 소중한 사람을 만날 때 나마스테! 라고 인사한다 합니다. 그대와 나는 영혼이 하나라는 뜻의 인사말이라고 합니다. 저는 지금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고 계신 여러분들과 지금 이 순간 영혼이 하나임을 가슴 깊이 느낍니다. 나마스테! 대단히 고맙습니다.


  구름이 하늘에 차일을 드리워 삼복 더위를 식혀주었다. 더러는 망자의 후덕함이라 했고, 더러는 주님의 은혜라 했고, 더러는 천당에 가신 징표라 했다. 산 일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2004년 8월 9일 월요일 12시, 13년 동안을 기다려온 지아비 곁에 한줌 흙으로 내 어머니 누우셨다. 적막이 고요로 몸 바뀌었다. 이제 다시는 육신의 내 어머니 볼 수 없는 것이었다.


느티나무

  아우는 느티나무를 심자고 했다. 느티나무의 자태와 품위가 제안의 이유였지만 어머니가 두고 가신 빈 집, 어머니가 풀어놓은 막무가내의 허전함을 다스리고 싶은 것이 내심의 이유였으리라 짐작되었다. 어머니의 빈자리는 너무 큰 것이어서 바람의 쓸쓸함도, 달빛의 고적함도, 숨 멎을 듯 캄캄한 적막도, 시린 별빛의 반짝임도 너무 크고 무거워서 자식들은 너나 없이 가위눌렸다.

  

그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까치발 세우고 바위 위에 서서 기약 없는 낮과 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은 내 집이 아니야, 내 살 곳 아니야...늘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던 듯 했다. 생명은 모질고, 생명은 질기고, 생명은 끔찍이도 외경스럽다. 우리 만남은 오래된 약속, 크다란 숙명이었으리라. 그날 나는 등이 시려웠고, 어깨가 허전했고,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팠다.


  어머니의 한 아이는 삼겹살을 굽자했고, 어머니의 또 한 아이는 가재를 잡자 했고, 어머니의 또 한 아이는 소주를 마셨고, 어머니의 또 한 아이는 잡은 가재를 신기해했고, 어머니의 또 한 아이는 다람쥐를 쫓아갔고, 어머니의 또 한 아이는 더 많은 가재를 잡기 위해 계곡을 뒤졌고, 마침내 어머니의 또 한 아이가 기다리는 그를 큰소리로 발견했다.


  봉홧불 올리던 천택산 계곡, 가을이면 은하수가 흘러드는 그곳에서, 여름이면 별똥별이 떨어지던 그곳에서 그는 양말 벗지 않는 신부처럼, 신발 끈 풀지 않는 아내들처럼, 누가 부르면 뛰쳐나갈 태세의 아이처럼, 떠돌다 떠돌다 어느 나무 그늘에 잠든 외로운 영혼처럼 차가운 바위 위에 그렇게 서 있었다.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어머니의 아이들은 시려운 등으로, 허전한 어깨로 그를 옮겼다. 넘어질까 부축하고 부러질까 애태우며 조심조심 그를 옮겼다.


  고요의 남쪽에 느티나무 두 그루를 심었다. 한 그루는 우모제 곁에, 다른 한 그루는 허심제 앞에 정성 들여 심었다. 못 먹고 자란 아이처럼 가는 몸매 껑충한 모습이 안쓰러웠다. 그들은 오누이 같기도 하고, 의형제 같기도 하고, 요즈음 아이들 말로 사귀는 사이 같기도 했다. 몇 살이나 되었을까? 사람으로 말하자면 청소년에 해당될 듯한, 아니 중년이 훨씬 지난 나이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아득히 머나 먼 변방을 떠돌다 제 집에 돌아 온 아이들처럼 머쓱해 보였다. 새잎 돋고, 녹음 지고, 황금의 나뭇잎 허공 두드리는 날 오리라. 여기가 내 살 자리이군... 땅 깊이 뿌리내려 편안한 날 쉬이 오리라.


잎과 가지    

  잎과 가지는 느티나무의 잎과 가지이고, 「잎과 가지」는 내가 기분 나면 형님이라 부르는, 아무리 헛폼 잡아봐야 아무 것도 아닌 시인들의 천국에 오직 아무 것으로 서 있는 오규원 선생의 작품 제목이다. 내가 심은 느티나무를 생각하다가 왜 선생을 떠올리게 된 것일까? 어느 잡지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예술이란 중도라든지 타협이라든지 모범이라든지 하는 것에 있지 않고 극단에 있습니다. 이 점에 유의해 주었으면 합니다. 대중도 없고 환호도 없고 독자도 없는 곳으로 가십시오. 그곳에서 자리 잡으면 당신의 독자가 새로 창조될 것입니다." 라고 후학들을 향해 말할 때의 그 '극단'! 극단적으로 퉁겨 오르는 외로움의 날 빛 때문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빈집에 나무를 심으면 오히려 빈집을 더 빈집이게 하리라는 내 막연한 생각을 그래, 그렇기 때문이야... 명료하게 일깨워주리라 여겨지는, 언제 읽었던지 기억 희미한 선생 시의 한 구절을 찾고 싶었다. 어디서 보았더라? 구석구석 뒤지는 헛수고 끝에 선생의 제자인 이원 시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툭하면 그에게 전화 걸어 선생의 자료를 부탁하는 것이 미안했지만 그는 한결같이 친절하고 진지한 자세로 내 미안함과 불편함을 덜어주곤 했다. 내 기억은 워낙 흐린 것이어서 이원 시인이 보내준 다음의「잎과 가지」는 내가 찾고자 했던 그 구절을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 확실하지 않다.


가지가 뻗으면 허공은

가지 안에 들어가 자리잡는다

잎이 생기면 허공은

잎 안에 들어가 몸을 편다

새가 날고 잠자리가 날고

꿀벌이 날면 허공은

새와 잠자리와 꿀벌이 되어

함께 난다 부리와 날개와

침이 되어 반짝인다


잎 속의 허공은 잎이고

잎 밖의 허공은 빛이다


  선생의 시론에 기댈 때 가지는 가지이고 잎은 잎이다. 선생의 시론에 기댈 때 허공은 공허로 바꾸어도 안되고 허공을 공복으로 바꾸어 읽으면 더더욱 안 된다. 선생이 제일 싫어하는 게 사물을 개념의 불로 익히는 인간의 오만과 편견 아니던가. 나는 한 일간 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글에서 선생의 시를 다음과 같이 감상한 적이 있는 것이다.


작약꽃이 한창인 아파트 단지에서

나비 한 마리가 길을 가고 있다

어린 후박나무를 지나 향나무를

지나 목단을 넘고 화단 가장자리의

쥐똥나무를 넘어 밖으로 가더니

다시 속으로 들어와

한창인 작약꽃을 빙글빙글 돌더니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혼자 훌쩍 날아올라 넘더니

비칠대는 온몸의 균형을 바로잡고

날아 넘은 허공을 뒤돌아본다

뒤돌아보며 몸을 부풀린다

                         -오규원, 「나비」전문


  불을 만든 인간은 음식을 익혀 먹는다. 후박나무는 바람과 햇볕을 날것으로 먹고, 쥐똥나무는 불을 이용할 줄 모르므로 흙과 물을 익혀먹지 못한다. 날 음식을 먹는 것은 야만이고 익혀먹는 음식문화가 고급한 것이라는 생각은 인간의 오만과 편견에 의한 것이다. 개념과 은유가 익힌 음식이라면 날 음식은 사변화(思辨化) 이전의 사실과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나비가 무슨 의미냐고 묻지 말라. 그것은 곧 나비를 개념의 불로 익히는 꼴이 된다. 작약꽃이 한창인 아파트 단지의 초여름 정경을 그냥 날것으로 즐기기만 하면 된다. 그때 비로소 그대는 나비의 친구이다. 나비가 왜 제 몸을 허공에 부풀리는 지를 알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2004년 9월 27일 내가 옮겨 심은 느티나무가 날것의 나무가 아닌 애달픈 혈육이듯, 한 많은 여인이듯, 내 어머니의 실루엣이듯, 느티나무 시린 어깨에 기대어 바라볼 때, 가지가 뻗으면 가지 안에 들어가 자리잡고, 잎이 생기면 잎 안에 들어가 몸을 펴는 허공은 날것의 허공이 아니다. 지금 나는 등 시렵고 어깨 허전해서 선생 시의 허공을 날것으로는 먹을 수 없는 것이다.


허공과 칼국수

  허공엔 댓돌 위에 벗어놓은 내 어머니 하얀 고무신 있고, 하얀 고무신 신고 구만리 가노라면 북두칠성 있고, 북두칠성 아래 구병산 있고, 풀뿌리 잡고 기도하는 내 어머니 석 달 열흘 거기 있고, (나는 오래 전 「태몽」에서 어머니의 삶의 한 끝을 이렇게 노래했었다.)


동해안 어느 바닷가에서 어머니는 미역을 파셨다 어머니 머리 위에 얹힌 미역의 긴 올을 거슬러 오르면 그 끝에 우뚝, 구병산이 있고 구병산 가파른 벼랑이 있고 벼랑 끝에 매어 달린 내 어머니의 석 달 열흘이 있다 산발치까지야 3시간이면 닿을 수 있겠지만 동해 바다에 몸푼 어머니의 미역은 길고 미끄럽다


두리번거리며 어머니

동해안 작은 마을을 서성이시고

밀려오는 파도 소리에 무명옷 적시며 저녁 맞으시고

참봉의 占卦가 펼쳐 든 바다

강보에 쌓인 어머니의 그 바다

한스럽고 질긴 올을 거슬러 오르며 나는

수없이 미끄러져 발을 다친다


내가 어머니의 태몽 속 성난 멧돼지였던 구병산 어느 움막 속으로 들어가기에는, 지난 40년이 너무 멀고 낯설다 대구에서 3시간이면 구병산 날벼랑에 닿을 수 있겠지만 황간이나 영동 부근 어디쯤에서 나는 차를 돌려야 할지도 모른다 길고 질긴 어머니의 미역이 자주자주 핸들에 감긴다면, 두리번거리며 어머니 아직도 동해 바다에 계시고 바다에 몸푼 어머니의 미역이 자주자주 헛바퀴를 구르게 한다면,

 

석 달 열흘 뒤에 어머니의 아이들 있고, 끊이지 않는 병치레  있고, 육 이오 총소리 있고, 낙동강 있고, 피난 간 아버지 있고, 젊은 날 아버지 술 주정 있고, 보리 고개 있고, 낫과 호미 든 어머니 있고, 허기진 날들 있고, 큰애야 누룩 좀 구해 오라 하시던 아마도 죽음을 예감하신 지난 봄 있고, 지문이 다 닳은 하얀 손 있고, 열 가지 약초로 빚은 솔잎 동동주 페트병에 담아서 이 집 저 집 건네주시던 자애와 연민의 눈빛 거기 있고, 다시 하얀 고무신 신고 구만리 가노라면 가슴에 묻어 둔 딸자식 있고, 나 몰라라 앞서 간 영감 있고, 철들지 않는 아이들 있고, 물가에 세워 둔 아이들 있고, 예들아 감이 다 익었구나 울긋불긋 얼굴을 내밀었구나 어서 와서 따가거라 운전 조심하거라 아무 것도 필요 없다 그냥 오너라 어머니 손떼 묻은 전화기 있고, 약봉지 있고, 휠체어 있고, 또 다시 하얀 고무신 신고 구만리 가노라면 구불구불 논둑 길 있고, 논둑 길 끝에 예배당 있고,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곡조가 똑 같은 찬송가 있고, 책갈피 다 닳은 성경책 있고,,,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편 23편 거기 있고, 주님의 지팡이 있고, 다시 또 하얀 고무신 신고 구만리 가노라면 2004년 7월 4일 일요일 있고, 마지막 식사 있고, 칼국수 있고, 내 등에 업힌 어머니 있고, 못 견디게 배 아픈 입원실 있고, 발동동 구르는 복도 있고, 비좁은 중환자실 침대 있고, “어머이 빨리 일어나셔서 칼국수 해주세요”, “오냐 그러마, 고개 끄덕이시던 이승에서 나눈 마지막 대화 있고,

 

  1917년 11월 11일부터 2004년 8월 6일까지 내 어머니 하얀 고무신 속 허공은 끝이 없는 구만리 장천이어서, 자꾸 눈물이 나서. 배가 고파서 나는 지금, 고요의 남쪽 느티나무 가지 끝에 매달려 망연자실하다. 쓸쓸한 바람, 고적한 달빛, 숨 멎을 듯 캄캄한 적막, 시린 별빛, 혹은 텅 빈 날의 외로움과 텅 빈 날의 그리움과 텅 빈 날의 기다림으로 가득한 허공, 너무 커서 헤아릴 수 없고, 너무 무거워서 껴안을 수 없는 어머니의 그날들, 기러기 울어 예는 찬 하늘 속에서 아직도 나는 망연자실하다. 어미 몸 다 파먹고 두리번두리번 제 어미 찾는 거미새끼처럼.


새가 날고 잠자리가 날고

꿀벌이 날면 허공은

새와 잠자리와 꿀벌이 되어

함께 난다 부리와 날개와

침이 되어 반짝인다


  봄이 오면 그러할 것이다? 느티나무 움트면 그러할 것이다? 그날이 오면, 그리운 당신 몸에 푸른 잎 돋아나는 그날이 오면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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