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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응접실

반 뼘의 가을

by 고요의 남쪽 2009. 7. 26.

반 뼘의 가을/문무학


여름은 한 뼘으로도 모자라는 길이었는데


이 가을은 작은 손 반의 반 뼘도 안 된다.


그 누가

훔쳐간 듯한

지갑 속의 용돈 같다.


*누구에게나 가차없으므로 시간은 냉엄하다. 시간의 처자식인 세월에게서는 늘 건초더미 냄새가 난다. 긴 여름 하염없고 짧은 가을 속절없다한들 흐르는 세월 앞에서 속수무책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짧은 가을날의 허망함, 그 가위눌린 마음을 ‘누가/훔쳐간 듯한/지갑 속의 용돈’에 비유하는 시인의 위트는 놀랍다. 이 위트는 우스개가 아니라 숨막히는 트릭이다. 귀뚜라미 소리에 가슴 다친 당신은 그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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