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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응접실

벼 익는 들녘

by 고요의 남쪽 2009. 7. 28.

벼 익는 들녘/박기섭


1

벌거벗은 천둥 번개 다 쫓겨간 하늘가에

황금의, 수천 수만의, 고기떼를 풀어놓고

아득히 벼 익는 들녘, 나는 네게 갇힌다


2

황금의, 수천 수만의, 고기떼를 풀어놓고

아득히 벼 익는 들녘, 나는 네게 갇힌다


3

아득히 벼 익는 들녘, 나는 네게 갇힌다


*이 시의 주제어는 ‘갇힌다’이다. 1의 세 행은 2의 두 행을 가두고, 2의 두 행은 다시 3의 한 행을 가둔다. 갇힘과 가둠의 관계로 짜여진 입체 구조는 아득히 벼 익는 들녘에 나를 가두기 위한 시적 전략이다. 그대여 삶이 시들할 때 농부들이 풀어놓은 ‘황금의, 수천 수만의, 고기떼’ 속을 찾아가 보라.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햇살, 옥양목처럼 차고 부드러운 새털구름, 거기 잃어버린 시간들이 메뚜기 떼처럼 뛰어 놀고 있으리니... 어이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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