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읽는 밤/박주택
가을은 저렇게 오는가
저수지에서 몰려오는 안개는 장례식장의 마당을 가득 메우고
울음과 울음 사이를 이어주던
자동차의 불빛도 끊어진 지 오래
술 취한 사내가 술병을 복도 바닥에 집어던진다
고요에서 발자국을 기억해내는 사람들
그 발자국에 잠겨 문을 찾는 사람들
수많은 작별이 살아 있음으로 자신과 포옹하는 밤
저렇게 오는가 가을은
사람에게 붙잡힌 어둠이 잉잉거리고
산 중턱 모텔에서 반짝거려오는
네온 불빛에 잠시 몸을 빼앗기는
이 모든 것들의 멀리 있지 않음처럼
울음을 더듬는 빛이
술병 조각에 베인 채
이제 돌아가라고 어서 도망가라고
자욱한 안개 속에다 피를 흘려놓는
귀뚜라미 우는 밤이다
*지금은 없어진 생맥주집 <혹톨>이나 <가보세>에서 그때 글쟁이들은 사심 없이 자주 취했었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로 시작되는 <목마와 숙녀>는 낭송의 단골 메뉴였다. 작별, 죽음, 울음, 술병 등이 덜그럭거리는 박주택의 바람 속에서 나는 ‘인생은 그렇게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하고 한숨 짓던, 지금은 가고 없는 박인환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