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올 것 같은 날/서종택
금방 비올 것 같은 날
이제 한차례 비 내리고 나면
가을이구나, 하고
나뭇잎들 풀이 죽겠죠
이 가을
당신과 함께 건너가는 제 몸에
끝없는 오솔길
새겨집니다
*비는 우울의 젖은 사원, 가을은 스산한 우수의 뜨락; 이렇게 말한다면 근사해 보이는가. 대체로 노래가 연민과 비애에 젖줄 대고 있다면 비 내리지 않는 나라, 가을 없는 세상에도 시가 있을까. 시인이란 풀 죽은 나뭇잎 위에 우울의 사원을 짓고, 가을이구나 하는 나뭇잎 목소리로 우수의 뜨락을 비질하는 사람. 비올 것 같은 그런 가을날, 시인이 가리키는 끝없는 오솔길 거닐어 보라. 그대 몸에 오솔길 새겨진다면 함께 갈 그 사람 찾아오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