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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응접실

나뭇잎의 말

by 고요의 남쪽 2009. 7. 20.

나뭇잎의 말/배한봉


바람 불고 어둠 내려서 길 잃었네

나무야, 너는 굳센 뿌리로 대지를 움켜쥐고

팔 들어 별을 헤아리겠지만, 나는

네 뿌리 밑으로 노래의 씨를 묻는다네

길 잃은 슬픔 너무도 오래 사랑하여

슬픔이 한 꽃송이로 피어나기를 기다리는 나는

외로운 시간 너무도 오래 사랑하여

슬픔이 한 꽃송이로 피어나기를 기다리는 나는

나무야, 네 뿌리 밑으로 별의 푸른 밝음을 묻는다네

영영 결별 없는 사랑이 되기 위해

언 땅 위에서 아직도 집 짓지 못한 벌레의 집이 되고

동행 없어 외마디 비명으로 죽어 가는 바람의 친구가 되고

나는 이제 예감의 숲에

아프고 환한 노래의 씨를 묻는다네


*떨어지는 나뭇잎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떨어지는 나뭇잎에서 우리는 할 수 없이, 가이없는 이별과 정처 없는 헤맴과 생의 덧없음을 본다. 햇살을 모아 꽃을 피우던 꿈도, 바람을 불러들여 제 몸을 부풀리던 오만도, 하늘까지 타오르던 초록의 기상도 떨어진 나뭇잎에는 이제 없다. 시인은 떨어진 나뭇잎으로부터 ‘나는 이제 예감의 숲에/아프고 환한 노래의 씨를 묻는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대가 떨어진 나뭇잎이라면 무슨 말하겠는가? 가을이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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