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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의 빈터

폐사지廢寺址

by 고요의 남쪽 2013. 3. 29.

맑은 행복을 위한 345장의 불교적 명상

197폐사지

 

▣이 우주 전체가 절이다. 없던 절을 세우고 그 절 앞에 가서야 마음을 돌본다고 옷깃을 여미는 것은 중생들이다. 실은 없던 절이 없어진 것이니 폐사지라는 말도 공연한 것이다.

경주 황룡사의 드넓은 빈터에서 제자리로 원시반본原始返本하듯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간 폐사지의 자연스러움과 평화로움을 한없이 느낀다. 그리고 그 적요한 공간에서 절을 세우는 것조차도 욕망이라고, 절을 찾는 것조차도 방편이라고, 절을 만나면 절을 부수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부수라는 소리를 듣는다. 황룡사가 제자리로 돌아간 평원 같은 원적지原籍地엔 풀과 새와 나비들이 아무것도 의식하지않은채, 제 리듬대로 놀고 있다. 우주라는 큰 절 안에서 그들은 사람들처럼 유난스럽게 무엇을 만든다고 소란을 피우지 않으며 쉬는 듯 놀고 있다. (정효구)

 

▣원적지의 몸은 적요이고, 원시반본의 마음은 놀이이다. 일체의 인위人爲는, 글을 쓴다는 것 조차도 없던 절을 세우려는 욕망이고, 폐사지라는 없던 말을 만들어 허상을 부추키는 부질없는 방편이다. 풀과 새와 나비들처럼 우주의 리듬에 들 때 적요와 놀이의 원적지에 닿으려니, 부서지지 않는 절이 되리니......무엇을 위해, 더 끙끙거리고 있는가! 한심한 영혼이여.(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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