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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응접실

첼로처럼

by 고요의 남쪽 2009. 6. 19.

첼로처럼/권국명


여름 쏘내기도 멎고

너울거리던 강물도 푸르게 잦아지고

오늘은 투명한 대기 속으로

우리 살 서걱이는 푸른 바람 불다.


내 영혼은 둥근 첼로처럼

줄이 조여지다.

허공에 내던지면

내 혼이 바람같이 긁히는, 큰

소리나다.


*첼로는 귀로 듣는 악기가 아니다. 천상의 너그러움을 닮은 4번 현의 보랏빛으로부터 악마적 처연한 초록을 뿜어내는 1번 현에 이르기까지, 그 불가사의한 울림의 빛깔을 내 귀는 감당하지 못한다. 우리는 그것을 가슴으로 듣고 몸으로 삼킨다. 만상(萬象)은 그 움직임을 멎고 흔적 없이 잦아들어 대기는 셀로판지처럼 팽팽하고 투명하다. 오직 바람만 어떤 예감처럼 살 속을 서걱일뿐; 허공과 함께일 때 바람은 자주 그대 영혼의 줄을 조이고, 영혼의 줄을 긁어 큰 소리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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