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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응접실

트럼펫

by 고요의 남쪽 2009. 6. 22.

트럼펫/이수명


빛이 옷을 입는다.

트럼펫 속에서 벌레가 울고 있다.

벌레는 아주 조금씩

트럼펫을 먹는다.

트럼펫이 먹히는 동안

나는 빨간 손으로 트럼펫을 연주한다.

빛이 옷을 입는다.

빛이 벌레의 옷을 입는다.

허공에서 거대한 벌레가 숨죽여 울고 있다.

나는 한 마리 벌레 속으로 사라진

트럼펫을 연주한다.

나의 손은 빨갛다.


*제 몸 속에 벌레를 기르는, 벌레에게 먹히는, 벌레 속으로 사라지는 내 빨간 손이 연주하는 「트럼펫」은 환각의 세계이다. “도달할 수 없는 것에 도달하고자 할 때 환각을 본다. 환각은 무리하게, 아름다움을 팽창시킨다. 이 팽창된 세계 속에서는 매순간이 도달된 순간이다. 환각은 열쇠를 가지고 있다. 시를 읽는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열쇠로 여기에 들어선다. 그리고 그 열쇠에 맞게 환각은 이동한다.”라고 시인은 쓰고 있다. 시인의 내면이 빚은 환각 속의 빨간 손, 그 손의 주인은 아마도 심각한 개구쟁이 일듯하다.(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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