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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응접실

흉터 속의 새

by 고요의 남쪽 2009. 6. 25.

흉터 속의 새/유홍준


새의 부리만한

흉터가 내 허벅지에 있다 열다섯 살 저녁 때

새가 날아와서 갇혔다


꺼내줄까 새야

꺼내줄까 새야


혼자가 되면

나는 흉터를 긁는다

허벅지에 갇힌 새가, 꿈틀거린다


*샤르는 “매혹적인, 우리는 그 새에 경탄하고 그 새를 죽인다”라고 썼다. 이 단도직입적인 진술 속의 새는 우리에게 날아온 새가 아니라 우리 가운데 있는 새이다. 열 다섯 살 저녁 때 새가 날아와서 갇혔다는 것은 제 몸 속의 새를 느꼈다는 것. 새의 자유와 비상, 그 푸른 맨발을 상상해 보라. 사춘기란 제도와 풍속의 억압에 진저리치는 나이, 감추고 싶은 흉터를 갖는 나이, 그러므로 시인은 혼자일 때 허벅지에 갇힌 새와 논다. 새를 감춘 그대 허벅지의 흉터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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