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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노랫말

적막한 커피

by 고요의 남쪽 2009. 6. 13.

적막한 커피/강현국



(나래이팅)  25번 국도를 따라 하늘까지 70리 밖에 남지 않는 그 마을에 들른다면 오랑캐꽃 정다운 논둑길 너머 찔레꽃이 풀어놓은 실개천을 만날 수 있으리라. 작아서 너무 작아서 군사지도에도 그려 넣을 수 없는, 눈감고 보면 핀셋트로도 집어낼 만한, 그러나 내 마음 한 가운데 큰 소리로 흐르는 아름다운 실개천을 만날 수 있으리라. 물풀 사이로는 물새가 새끼를 데리고 잘 다니는 좁은 길을 만날 수 있으리라. 땀이 베어 미끄러지던 고무신 신고 책보자기 울러 메고 양철 필통 달랑이며 뜀박질하던 바위고개 언덕길을 당신이 내 손을 꼬옥 잡고 넘어서 오신다면.


세상에서 가장 키 큰 외로움이 봄비 소리에 머리 빗고 있네

세상에서 가장 키 큰 그리움이 노란 손수건 흔들고 있네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가을이 멀리 떠난 당신 오래 기다리네

어쩌다 여기까지 흘러왔을까 어쩌다 여기까지 흘러왔을까

달빛에 기대앉아 마시는 커피, 세상에서 가장 적막한 커피


(나래이팅) 아버지에게도 그랬고 어머니에게도 그랬다. 나에게도 마찬가지로 춘궁의 그날, 하늘 아래 첫 동네는 버리고 떠나야할 곳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꿈의 기와집을 지었다 부수고 부수었다 짓는데 한 평생을 보내셨고 어머니는 창출을 고아 만든 한약을 이고 포항으로 동해로 열흘이나 보름씩 떠돌다 되돌아오는 게 고작이셨다. 아버지는 소심한 가장이자 선산의 조상을 지켜야할 책무 때문에, 어머니는 한 인간이기 이전에 아내이고 어머니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셨다. 가난한 시절 이 나라 부모들이 다 그와 같았겠듯이 아버지 어머니는 내게 삽과 괭이 대신 연필과 필통을 쥐어주셨고 나무지게 대신 책가방을 등에 메어주심으로 언젠가 그날 하늘 아래 첫 동네를 벗어나려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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