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가 있는 응접실

小雪/유홍준

by 고요의 남쪽 2010. 11. 28.
하늘에서도

빗자루로 쓸 수 있는 것이 내려서 좋다

동글동글 손으로 뭉칠 수 있는 것이 내려서 기쁘다

잠시겠으나

그늘 쪽 어깨에만 눈을 얹고 있는 구층 석탑처럼

묵묵히 서 있고 싶다 이 겨울은

창호지 같이 얇은 서러움으로 竹을 칠까 붉고 푸른

깃발처럼 펄럭여 볼까 아니야 아니야 울타리 쪽으로 밀어 부쳐놓은 눈이

조금씩 조금씩

녹아 없어지는 것이나 바라보아야겠다

-유홍준 '소설' 전문('현대시학'', 2010년 3월호)


춥고 외로운 계절이 돌아왔다. 어머니는 홀로 저 산 밑 마을에 시래기처럼 살고 계시고 내 누나며 동생들은 천지사방 찢어진 뿌리가 되어 흩어져 살고 있다. 가난하고 외롭고 서럽다. 이 겨울은 누구에게나 다 그런 계절이다. 그러나 이 추운 겨울에 하늘에서 빗자루로 쓸 수 있는 눈이 내리고 동글동글 손으로 뭉칠 수 있는 눈이 내린다. 좋다. 올 겨울에도 대설주의보가 내리면 고향으로 가야지. 가서, 내 고향 마을 앞뒤 산에 빈들에 솔밭에 하얗게 내린 눈을 실컷 보고 와야지. 경상남도 산청군 생초면 계남리…. 내 그리운 고향 원계남!

유홍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