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사리떼가
개천을 누비고 있다.
송사리는 떼단위로
몰려갔다 몰려왔다 한다.
잠도 떼단위로 자고 떼단위로 잠을 깬다.
송사리에게는 我가 없다.
너무 작아
있다 해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송사리는 혼자서 태어나고 혼자서 죽는다.
송사리떼가
개천을 누비고 있다.
개천에 자기 그림자를 만든다.
자기 그림자를 만들어놓고
송사리는 어디로 갔나
보자기만한 그림자 하나가 이리저리
개천을 누비고 있다.
-김춘수 '제36번 悲歌'(시집 '쉰한 편의 悲歌', 2002, 현대문학)
개천을 누비고 있다.
송사리는 떼단위로
몰려갔다 몰려왔다 한다.
잠도 떼단위로 자고 떼단위로 잠을 깬다.
송사리에게는 我가 없다.
너무 작아
있다 해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송사리는 혼자서 태어나고 혼자서 죽는다.
송사리떼가
개천을 누비고 있다.
개천에 자기 그림자를 만든다.
자기 그림자를 만들어놓고
송사리는 어디로 갔나
보자기만한 그림자 하나가 이리저리
개천을 누비고 있다.
-김춘수 '제36번 悲歌'(시집 '쉰한 편의 悲歌', 2002, 현대문학)
해질녘 다리 위에 서서 송사리떼를 내려다본다. '보자기만한 그림자 하나가 이리저리/ 개천을 누비고 있'다. 돌아가신 김춘수 선생도 저걸 보았나 보다. 늘그막에 저 송사리떼를 보며 '我'를 생각하셨나 보다. '혼자서 태어나고 혼자서 죽는' 我! 맞아. 김춘수 선생은 우리 시단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신 분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송사리'처럼 작은 분이시다. 그러니 우리 같은 건 오죽하랴. '떼단위'로 출근하고 '떼단위'로 퇴근하는 인간들이여. 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시는 이의 눈에, 틀림없다 우리는 송사리떼하고 똑같다. 유홍준/시인
'시가 있는 응접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인 박노해 (0) | 2010.10.11 |
---|---|
맛있는 시.부산일보 (0) | 2010.10.01 |
벌레 먹은 시 (0) | 2010.09.26 |
동사무소에 가자 (0) | 2010.09.18 |
말과 말 사이/조명선 (0) | 2010.09.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