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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의 빈터

맑은 행복을 위한 345장의 불교적 명상

by 고요의 남쪽 2010. 8. 24.

115. 자리이타自利利他

나도 이롭고 타인(혹은 타존쟈)도 이로운 삶이 있을까. 이를테면 나도 이롭고 뒷동산의 나무도 이로운 삶이 있을까. 또한 나도 이롭고 화단의 꽃도 이로운 삶이 있을까. 과학자들은 '共進化'를 말하기도 한다. 인간과 나무가, 인간과 꽃이, 인간과 동물이 相依相存하며 함께 진화의 길을 걸어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때의 진화는 적자생존의 시각에서 본 진화다. 그렇다면 다시 묻자. 나에게도 너에게도 이롭다는 말의 그 진정 이로움이란 무엇이냐고 말이다. 참된 이로움은 一心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삶을 살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이다. 인간들은 일심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나와 홀로 유일하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간적으로도 斷生을, 공간적으로도 개체성을 고집하는 이 분리된 인간들에게 일심을 깨우쳐주기란 매우 어렵다. 그렇더라도 인간들은 자리이타의 삶이 구현될 때 높은 수준의 보람과 감동을 느낀다. 자리이타라는 그 일심의 생명선이 움직였을 때, 인간들은 시키지 않아도 헌신과 신명의 삶을 살아간다.

▣耳 目 口 鼻를 생각해 본다. 귀와 눈과 입과 코를 생각해 본다. 그들의 기능과 역할과 각각의 중요성을 생각해 본다. 듣고, 보고, 말하고, 숨쉬는 것, 그 어느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렇다하더라도 만약, 경쟁사회의 풍속에 걸맞게 그 중 제일 중요한 것, 제일 중요한 자리, 제일 고귀한 위치를 점하려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자신의 필요성을 일깨우기 위해, 귀가 듣는 일을 포기한다면, 눈이 보는 일을, 입이 먹는 일을, 코가 숨 쉬는 일을 포기한다면 어떻게 될까. 귀가 없으니 정보가 막히고, 눈이 없으니 앞길이 막히고, 입이 없으니 먹이가 막히고, 코가 없으니 숨이 막히고,,,막히고 막혀 천하가 캄캄한 데 누가 있어 일등을 위해 박수칠 수 있으랴. 귀와 눈과 입과 코가 서로의 자리를 넘보지 못하게 한 조물주의 설계, 자리이타의 철학으로 빛나는.(2010. 8.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