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현에게
세한도 ․ 53
먼 산마루에 내려앉은 멍석만한 겨울 아침 햇살은 오슬오슬 추워 보인다. 이른 아침 어린이집 마루에 맡겨진 내 외손자 동현이처럼 아침 햇살은 잠시 겨울나무 숲을 머뭇머뭇 낯설어한다. 마음은 제 어미 등에 업혀 꽃그늘 아장아장 꿈길을 가고 낯선 세상 방문 앞에 저 혼자 우두커니 서 있는 우리 동현이처럼 여기는 우리 집이 아니야 우리 집이 아니야 먼 산마루 햇살이 겨울나무 숲의 스산함을 부추긴다. 내가 화장실에 가서 조간신문을 읽고 오는 동안 멍석만한 햇살은 수심찬 계곡과 환난의 검은 바위를 살같이 지나 어느 새 수성구 지산동 일대를 환하게 장악하고 우리 집 베란다 가득 넘실거린다. 장난감 마차를 타고 꽃밭을 말달리는 우리 동현이 파묻히는 웃음처럼 아니 그보다는 와인 잔에 찬물 붓고 할아버지와 쨍! 할 때 찰랑찰랑 넘치던 기쁨처럼 그때 그 해맑은 눈빛 너머 철새들의 이동을 이용해 내게로 온 어린 왕자처럼.
쨍!
얼음장에 금가는 소리의 말발굽 먼 산을 넘어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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