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 시의 곳간

태몽

by 고요의 남쪽 2009. 4. 17.

태 몽

동해안 어느 바닷가에서 어머니는 미역을 파셨다 어머니 머리 위에 얹힌 미역의 긴 올을 거슬러 오르면 그 끝에 우뚝, 구병산이 있고 구병산 가파른 벼랑이 있고 벼랑 끝에 매어달린 내 어머니의 석 달 열흘이 있다 산발치까지야 3시간이면 닿을 수 있겠지만 동해 바다에 몸푼 어머니의 미역은 길고 미끄럽다

두리번거리며 어머니
동해안 작은 마을을 서성이시고
밀려오는 파도 소리에 무명옷 적시며 저녁 맞으시고
참봉의 占卦가 펼쳐 든 바다
강보에 쌓인 어머니의 그 바다
한스럽고 질긴 올을 거슬러 오르며 나는
수없이 미끄러져 발을 다친다

내가 어머니의 태몽 속 성난 멧돼지였던 구병산 어느 움막 속으로 들어가기에는, 지난 40년이 너무 멀고 낯설다. 대구에서 3시간이면 구병산 날벼랑에 닿을 수 있겠지만 황간이나 영동 부근 어디쯤에서 나는 차를 돌려야 할지도 모른다 길고 질긴 어머니의 미역이 자주자주 핸들에 감긴다면, 두리번거리며 어머니 아직도 동해 바다에 계시고 바다에 몸푼 어머니의 미역이 자주자주 헛바퀴를 구르게 한다면.

'내 시의 곳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난한 시절  (0) 2009.05.09
기슴이 붉은 딱새  (0) 2009.04.30
먼길의 유혹  (0) 2009.04.24
여백  (0) 2009.04.17
빈 집에 대한 기억  (0) 2009.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