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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의 빈터

맑은 행복을 위한 345장의 불교적 명상

by 고요의 남쪽 2010. 4. 18.

38. 참선參禪

대상을 버린다. 이미지를 버린다. 생각을 버린다. 느낌을 버린다. 의지도 버린다. 판별도 버린다. 다 버린다. 버릴 수 있는 것은 다 떠나보낸다. 허공뿐인 몸, 허공뿐인  우주가 된다.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에 거주한다. 모든 것을 떠나보낸 허공 속의 몸이 가을바람 같다. 습기도, 무게도, 온도도, 색깔도 없는 가을하늘 같다. 그 가을바람과 가을하늘 같은 마음에 세상이 깃들게 한다. 昭昭靈靈한 세계에 머물게 한다.

▣허공은 자연이고 공허는 인위이다. 허공은 허공으로 虛空하고, 공허는 공허로 空虛하다. 허공과 공허는 비슷한 말이지만 섞이지 않는다. 허공하다는 말이 안되고 공허하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소소영영의 세계에는 가을바람 불지 않고 가을하늘 뜨지 않는다. 바람도 하늘도 흔적이다. 흔적은 허공이 아니라 공허이다. 손톱자국을 상기해보라. 대상이고 이미지고 생각이고 느낌이고 판별이다. '가을'은 소소영영이 아니라 허공에 덧칠하는 손톱의 주인이다. 정효구 선생이 어찌 그것을 모르랴. 不立文字의 어려움이 여기 있다. 그 어려움이 참선의 이유이다. 공허, 그것은 더럽혀진 허공이리라 (2010. 4.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