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중생심衆生心 4
중생심 때문에 아픈 것과 보살심 때문에 아픈 것은 다르다. 중생심의 아픔 속에는 이기적 욕망이 들어 있고, 보살심의 아픔 속엔 자비가 들어 있다. 중생심 때문에 과도하게 아파하는 사람은 언제나 민망하고 난감한 심정을 갖게 한다. 보살심으로 아파하는 사람이 공감과 존경을 자아내는 것과 구별된다. 뭇사람들의 아픔은 대체로 쓸데없는 중생심의 칭얼댐이다. 세상이 아프니까 내가 아프다는 유마거사의 아픔과는 다른 것이다. 유마거사의 아픔엔 밝은 깨침과 맑은 사랑이 있다. 그것을 보살심의 원천인 영성이자 佛心이라 불러본다.
▣예수는 예언된 삶을 살았다. 예수의 출생과 고난과 죽음과 부활은 선지자들에 의해 이미 예언된 사실들이었다. 그럼에도 예수가 한 제자에게 배반을 당했을 때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와 같이 몹시 섭섭해 했고, 마침내 십자가에 못박힐 때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예정된 잔을 피하고 싶어했고, 죽음이 올 때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캄캄한 고통을 비껴가려는 마지막 절규를 억제하지 못했다. 인간의 몸으로 온 그리스도였으니 아무리 예정된 삶이라하더라도 끝내 인간적 아픔을 건너 뛰게 할 수는 없었으리라. 예수의 아픔은 중생심의 아픔인가, 보살심의 아픔인가. 감람산에 엎드려 기도하는 예수의 모습에서 나는 중생심의 살과 보살심의 뼈를 가진 아픔, 생생한 아픔의 몸을 본다. (2010.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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