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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응접실

감옥

by 고요의 남쪽 2009. 10. 15.

감옥/강연호


그는 오늘도 아내를 가두고 집을 나선다

문단속 잘 해, 아내는 건성 듣는다

갇힌 줄도 모르고 노상 즐겁다

라랄랄라 그릇을 씻고 청소를 하고

걸레를 빨며 정오의 희망곡을 들으며

하루가 지나간다 나이 들수록 해가 짧아지네

아내는 제법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상추를 씻고 된장을 풀고 쌀을 안치는데

고장난 가로등이나 공원 의자 근처

그는 집을 가는 출구를 찾지 못해 헤맨다

그는 혼자 술을 마신다

그는 오늘도 집 밖의 세상에 갇혀 운다


*갇힌 줄 모르는 아내의 감옥살이는 라랄랄라 즐겁고 감옥을 의식하는 남편의 세상살이는 고장난 가로등 아래에서 슬프다. 술이 감옥 문을 열 수 있는 열쇠가 아니듯 정오의 희망곡 또한 진정한 아내의 열쇠가 아니다. 느끼고 못 느끼고의 차이일 뿐 출구를 찾지 못해 헤매는 것은 아내 또한 남편과 마찬가지다. 아내의 열쇠는 남편에게 있다지만 남편의 열쇠는 어디 있을까? 이 세상 아내들이여, 술 취해 돌아오는 당신 남편이 혹 세상에 갇혀 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찬찬히 살펴 보라. 출구가 어디인지, 열쇠가 무엇인지 특유의 육감으로 헤아려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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