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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응접실

초승달

by 고요의 남쪽 2009. 10. 8.

  초승달/김정용


 

 이미 오래 전 나는 가슴 한쪽을 뜯어냈다

  더는 상하지 말라고 던져버렸다

  남은 가슴으로도 충분히 아플 수 있으므로

  돌연 추억이란 게 필요할 때

  피도 눈물도 나질 않는 세상살이라

  느껴질 때, 그런 내가 대낮인데도

  하늘을 훔쳐보게 될 때

  남은 가슴을 퍽퍽 치면

  등뒤의 어둠이 갈라지며

  어둠이 토해낸 비명처럼 떠오를 것이기에

  머잖아 내게도 그런 날이 잦을 때

  꺼내와서 채워보리라

  남은 가슴이 받아들일 힘이 있는지

  꺼내와서 맞춰보리라    


* <돌연 추억이란 게 필요할 때>의 “돌연”은 <피도 눈물도 나질 않는 세상살이>의 고통을 강화하고, 남은 가슴이 왜 충분히 아파야 하는 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어둠이 토해낸 비명이라니, 초승달이 상하지 말라고  뜯어낸 한 쪽 가슴이라니! “비명”은 어둠의 각질을 뚫고 일어서는 삶의 경이임을 그대는 안다. 초승달이 망가진 기계의 맞은 편이 듯 그것은 딱딱한 죽음의 반대말인 것, 남은 가슴으로 충분히 아파야 하는 이유 아닐까.  머잖아 우리에게 그런 날이 잦을 때 추억을 받아들일 힘이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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