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승달/김정용
이미 오래 전 나는 가슴 한쪽을 뜯어냈다
더는 상하지 말라고 던져버렸다
남은 가슴으로도 충분히 아플 수 있으므로
돌연 추억이란 게 필요할 때
피도 눈물도 나질 않는 세상살이라
느껴질 때, 그런 내가 대낮인데도
하늘을 훔쳐보게 될 때
남은 가슴을 퍽퍽 치면
등뒤의 어둠이 갈라지며
어둠이 토해낸 비명처럼 떠오를 것이기에
머잖아 내게도 그런 날이 잦을 때
꺼내와서 채워보리라
남은 가슴이 받아들일 힘이 있는지
꺼내와서 맞춰보리라
* <돌연 추억이란 게 필요할 때>의 “돌연”은 <피도 눈물도 나질 않는 세상살이>의 고통을 강화하고, 남은 가슴이 왜 충분히 아파야 하는 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어둠이 토해낸 비명이라니, 초승달이 상하지 말라고 뜯어낸 한 쪽 가슴이라니! “비명”은 어둠의 각질을 뚫고 일어서는 삶의 경이임을 그대는 안다. 초승달이 망가진 기계의 맞은 편이 듯 그것은 딱딱한 죽음의 반대말인 것, 남은 가슴으로 충분히 아파야 하는 이유 아닐까. 머잖아 우리에게 그런 날이 잦을 때 추억을 받아들일 힘이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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