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이삭
화엄사華嚴寺
어느 쪽에 서서 보아도 반듯하다. 넘침도 모자람도 없다. 앞모습, 옆모습, 뒷모습, 어디를 보아도 팔방미인처럼 만족스럽다. 다만 내가 그 자리에 섬으로써 균형이 깨지게 될까 두렵다. 그러나 완벽함은 그 속에 드넓은 중화中和와 허공虛空의 세계를 지닌다. 그러나 그 하나쯤 뒤뚱거려도 절은 무사하리라. 어쩌면 그 뒤뚱거림마저 고려하며 균형을 맞춰 지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 때의 관광객들이 버스에서 왈칵 쏟아져 나온다. 그렇더라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그들이 절에 영향을 미치기보다 절에 그들에게 영향을 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정효구)
▣구례 화엄사에서 하룻밤 묵은 적 있다. 30여년이 흘러갔지만 허공 가득 쏟아져 내리던 별빛과 지리산 자락에 흘러넘치던 풀벌레 노래와 해맑아서 손 시리던 계곡 물소리가 지금도 생생하게 눈에 밟힌다. 내 절망의 이삭을 추스르던 그 때 그 별빛과 풀벌레 노래와 계곡 물소리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오래된 서적처럼 끄떡없으니 아마도 화엄에 이르렀나보다.(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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