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퍼니
운판雲版
우리는 날개가 퇴화된 땅짐승인가, 아직 날개를 달지 못한 지상의 인간인가. 운판이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날개를 달고 비상하던 지나간 시절과,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미래의 어느 날을 떠올려본다. 그러나 날개는 하나의 현상이자 형상이다. 날개가 돋아났다고 속까지 자유로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토록 찬탄하는 하늘의 새들도 날개만 달렸지 하루 종일 먹이를 찾으러 방황한다. 그러고 보면 자유는 날개에도, 하늘에도 존재하지 않고 공중의 공성空性을 알아차린 자에게만 소낙비처럼 찾아오는가 보다. (정효구)
▣∼부터의 자유, freedom from. 의식주로부터, 근심걱정으로부터, 감각과 인식으로부터, 무거움과 가벼움으로부터, 있음과 없음으로부터, 오고감으로부터의 해방, 자유. 자유의 형상인 날개, 가벼운 날개, 가벼워 몸이 없고, 몸이 없어 그림자가 없는 날개, 날개 없는 날개, 구름. 구름으로부터 문득 쏟아지다 문득 멎는 한여름 소낙비, 구름의 날개, 날개의 에피퍼니. 날고 싶다! 단 한 번만이라도. (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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