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정(庖丁)을 꿈꾸는 시간
…포정이 문혜군(文惠君)을 위해 소를 잡은(가른) 일이 있다. 손을 대고, 어깨를 기울이고, 발로 짓누르고, 무릎을 구부리는 동작에 따라 [소의 뼈와 살이 갈라지면서] 서걱서걱, 빠극빠극 소리를 내고, 칼이 움직이는 대로 싹둑싹둑 울렸다. 그 소리는 모두 음률에 맞고, [은나라 탕왕 때의 명곡인] 상림(桑林)의 무악(舞樂)에도 조화되며, 또 [요임금 때의 명곡인] 경수(經首)의 음절에도 맞았다.
문혜군은 [그것을 보고 아주 감탄하며] ‘아, 훌륭하구나. 기술도 어찌하면 이런 경지에까지 이를 수가 있느냐?’라고 말했다. 포정은 칼을 놓고 말했다. ‘제가 반기는 것은 도(道)입니다. [손끝의] 재주(기술) 따위보다야 우월한 것입죠. 제가 처음 소를 잡을 때는 눈에 보이는 것이란 모두 소뿐이었으나(소만 보여 손을 댈 수 없었으나), 3년이 지나자 이미 소의 온 모습은 눈에 안 띄게 되었습니다. 요즘 저는 정신으로 소를 대하고 있고 눈으로 보지는 않습죠. 눈의 작용이 멎으니 정신의 자연스런 작용만 남습니다. 천리(天理:자연스런 본래의 줄기)를 따라 [소가죽과 고기, 살과 뼈 사이의] 커다란 틈새와 빈 곳에 칼을 놀리고 움직여 소 몸이 생긴 그대로를 따라갑니다. 그 기술의 미묘함은 아직 한 번도 [칼질의 실수로] 살이나 뼈를 다친 일이 없습니다. 하물며 큰 뼈야 더 말할 나위 있겠습니까? 솜씨 좋은 소잡이(良庖)가 1년 만에 칼을 바꾸는 것은, 살을 가르기 때문입죠. 평범한 보통 소잡이(族庖)는 달마다 칼을 바꿉니다. [무리하게] 뼈를 자르니까 그렇습죠. 그렇지만 제 칼은 19년이나 되어 수천 마리의 소를 잡았지만 칼날은 방금 숫돌에 간 것 같습니다. 저 뼈마디에는 틈새가 있고 칼날에는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 없는 것을 틈새에 넣으니, 널찍하여 칼날을 움직이는 데도 여유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19년이 되었어도 칼날이 방금 숫돌에 간 것 같습죠. 하지만 근육과 뼈가 엉긴 곳에 이를 때마다, 저는 그 일의 어려움을 알아채고 두려움을 지닌 채, [충분히] 경계하여 눈길을 거기 모으고 천천히 손을 움직여서 칼의 움직임을 아주 미묘하게 합니다. 살이 뼈에서 털썩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흙덩이가 땅에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칼을 든 채 일어나서 둘레를 살펴보며 [떠나기가 싫어] 잠시 머뭇거리다 마음이 흐뭇해지면 칼을 씻어 챙겨 넣습니다. 문혜군은 말했다. ’훌륭하도다. 나는 포정의 말을 듣고 양생(養生)의 도(참된 삶을 누리는 방법)을 터득했다.…
노군(老君)이 말했던 ‘포정해우’는 장자(莊子) 양생주(養生主)편에 있었다. 포정(庖丁)이란 이름이 각별했다. 그 각별함 때문이었는지, 그는 순식간에 나의 내부로 잠입했다. 잠입(潛入)……이 맞는 말일 것이다. 슬며시 들어왔으니 언젠가는 또 그렇게 나가겠지, 그러나 그는 한번 들어와서는 통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난망(難望)이다. 부러움이었을까? 아니면 질투심? 직업을 이름으로 삼을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또 다른 무엇이 있었던가? 백정의 칼……? 언젠가 보았던 무협영화가 생각이 났다. 신용문객잔(新龍門客棧)이었던가, 주방장의 칼솜씨가 마지막 반전을 이루는…… 그게 결국은 포정의 고사(故事)를 패러디한 것이었다는 것…… 그 정도로 그의 거처가 그렇게 난공불락의 요새가 될 수 있는 것인지……?
처음에는 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포정이 은인자중치 않고 나의 일거수 일투족에 참견한다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다. 그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아니겠는가? 그는 나를 감시하고 있다. 왜 그는 나를 감시하는가? 생각이 그곳에 미치자 갑자기 혼란이 찾아왔다. 내가 그를 붙잡아두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포정의 삶에서 보이는 저 쾌활한 혼연일치인가?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그런 식의 혼연일치는 행복감의 첫째가는 전제 조건일 것이다. 그게 바로 ‘키르케의 마법’이 아니겠는가? 분열을 모르는 인간은 언제나 행복하다. 그의 이야기에는 ‘내가 무엇을 하느냐’의 문제가 원천적으로 거세되어 있다. 그런 이야기에서는 분열이 있을 수 없는 법이다. 그는 백정이다. 아마 장자가 그를 내세워 이야기를 만든 것도 그의 신분이 표상하는 그 미천함 때문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는 최하의 신분으로 최상의 신분을 거세시킨다. 그건 알레고리다. 알레고리로서의 포정이 가르고 떼어내는 것은 소의 살과 뼈가 아니라 인간의 욕망이다. 인간의 욕망을 거세한 이야기, 주체의 자유로운 선택을 거세한 이야기가 진정한 삶의 교훈이 될 수 있는가? 오직 어떻게 대상을 볼 것인가만이 화제에 오를 수 있는 이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은 교훈이 될 수 없는 법이다…… 그에 대한 믿음을 강요하는 것은 가진 자들의 교활한 횡포다…… 나는 이제 그 횡포에 시달리는 것이 지겹다…… 자신이 무엇을 하는가에 대해서 아무런 회의도 하지 못하는 자의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혼란은 그렇게 이어진다. 하필이면 왜 지금일까? 혼란은, 이렇게 몰려다닐 수밖에 없는 것인가? 이미 나의 외부에서도 뜻밖의 혼란이 진행 중이었다.
달포 전부터 고약한 버릇이 되살아났다.(그건 내가 다시 무엇인가에 쫓기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동안 누려왔던 숙면의 평안이 갑자기 불연속선을 이루며 흔들리고 있었다. 불쑥불쑥 자다가 깨는 일이 많아졌다. 이번에는 일정한 시간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 이전과는 다르다. 이전에는 아무 때나 깨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거의 취침 후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사이에 깬다. 그리고는 참을 수 없는 공복감이 찾아오고 무엇이든 목구멍으로 넘겨야 다시 잠이 온다. 배가 부르면 부를수록 숙면의 시간이 길어진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증세였다. 그 증세가 언제부터 발생했는지는 기억에 없다. (나의 무의식이 그 기억을 잠재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검도를 시작한지 두어 해가 지난 뒤부터 그 버릇이 갑자기 사라졌다는 것은 기억할 수 있다. 아니, 좀더 명확히 기억해 보자. 그 버릇이 저절로 갑자기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차차 포식의 경향까지 띠게 되면서 비만의 원인이 되기도 했고, 모르긴 하지만 이빨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서(야식을 먹은 다음에는 양치질을 하지 않았다) 모진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던 것이다. 그것이 잊을만한 시점에서 다시 재발될 줄이야…… 처음 며칠간 우왕좌왕하며 걸신처럼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나를 딱한 눈초리로 흘겨보던 아내는 별 말없이 식탁 위에다 빵이나 과자류들을 가지런하게 차려놓았다. 도깨비 장난이 이런 것이리라…… 아침에 일어나 그 흔적을 보고 있노라면 불쑥불쑥 그런 염이 들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빵봉지며 과자 부스러기들의 파편들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저건 내가 아니다…… 왜 저런 분열이 있는가? 왜 나에게서 숙면의 시간이 다시 잠식당하고 있는가? 그러한 현실보다도 그것을 생각하는 시간이 더 괴로웠다.
노군은 그런 ‘지금의 나’에게 불쑥 ‘포정해우’를 말했다. 그가 나에게 이런 투의 이야기를 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와 함께 검도에 입문한 지도 이럭저럭 10년을 바라보지만 그 동안 그가 나에게 한 말이라곤 ‘칼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오늘은 컨디션이 아주 좋은 것 같군요’ 같은 것들뿐이었다. 그나 나나 속내를 드러내고 이야기를 할 시간이 없었다. 우리는 운동 시간에 맞추어 만나고 헤어진다. 이야기는 주로 운동 이야기뿐이다. 그러니까 결국 우리는 서로에게 ‘생활’을 보여줄 틈이 없었던 셈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그건 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10년간 서로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았다. 거의 매일 때리고 맞는 사이였지만, 그와 나 사이에는 엄연히 어떤 경계선이 있다. 엄밀히 말하자…… 우리는 서로를 이상화시키려고 애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서로의 베스트만 눈에 담으려고 애쓴다……고나 할까. 그런 그가 갑자기 포정을 소개하다니…… 그가 나에게 준 것이 위안인지, 아니면 고통인지 지금으로서는 확실하게 알 방도가 없다. 현재는 혼란뿐이기 때문이다.
내가 포정이 나의 생활 구석구석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보다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은 지난 주말의 일이었다. 직장 관계로 늘 멀리 떨어져 살아야 했던 오랜 친구가 가까이 전근을 와 가족단위로 상봉이 이루어지던 자리였다.
내려가라니까 여기까지 내려오긴 했다만…… 그러고 보니까 우리가 사범대학을 졸업한지가 올해로 20년째던가? 간단한 수인사가 끝나고 자리를 잡자마자 친구는 그렇게 말했다. 이쪽 지사로 발령이 나 바로 이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찾아간 자리에서 갑자기 그의 그런 말을 듣자 잠시 나는 당황스러웠다. 아마 그의 우울한 어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은 좀처럼 듣기 어려웠던 목소리였다. 그의 목소리는 실제든 전화기 속에서든 늘 명랑했고 활발했다. 친구는 생각 밖으로 의기소침, 예전의 숫기가 많이 쇠락해져 있었다. 구조조정이란 게 결국 뭐겠니? 사람 줄이자는 건데…… 명색이 최근에 뽑은 경력사원이라 바로 자르지는 못하겠고…… 우격다짐으로 자리도 마땅치 않은 이쪽 지사로 보내더라며 친구는 말끝을 흐렸다. 그가 잠시나마 맡고 있었던 영업관리 파트는 이쪽 지사에는 아무 소용이 없는 직분이라고 했다. 서울과는 달리 외주는 아예 없고 계열사들 구내식당에 때맞추어 원자재만 공급하면 되는 자리였고, 자리의 속성상 자신과 같은 중견 사원은 필요가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잠시 당황했던 나는, 정말이지 어이없게도, 그에게 불쑥 포정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가 79년에 졸업했으니까, 정확히는 19년이지…… 그건 포정이 자신의 경지를 숫자로 표현한 햇수이기도 하고…… 마치 오래 생각해 왔던 말처럼 능란하게, 나는 그렇게 거침없이 말문을 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포정이 19년 동안 수천 마리의 소를 잡았어도 칼날이 방금 숫돌에 간 것 같다고 말한 것에 우리 사정이 어쩌면 그렇게 방불한지 모르겠다. 내가 19년간 한우물을 파고 있는 동안 그는 몇 군데나 직장을 옮겨다녔다. 중간 중간의 실직 상태까지 합하면 이삼년이나 삼사 년마다 한 번씩 직업이 바뀐 셈이다. 내가 기억하는 그의 직업 순례는 외국어 학원 강사, 호텔 매니저, 외국인 경영의 보험회사 영업직, 외판(아파트 창호, 비데 등), 다시 호텔 매니저, 백수, E랜드 식품사업부 순이었다. 우리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은 국어, 영어, 수학을 제외하고는 거의 발령이 나지 않았던 때였다. 어떻게 이제 막 정규 고등학교로 승격된 갑종학교에 자리가 하나 비게 되었을 때, 그는 그 자리를 선선히 나에게 양보했다. 나는 놀고 있을 때였고, 그는 이제 막 시작한 학원 강사에 재미를 붙이고 있을 때였다. 그는 거기서 서울의 한 굵직한 호텔로 특채되어 갔다. 한창 경기가 좋았을 때였고, 외국어 실력 하나만 가지고도 웬만한 밑천이 되던 때였다. 먼저 서울로 간 그가 몇 달 후 같이 일해볼 생각이 없느냐고 전화를 했다. 곱절이 넘는 당장의 봉급도 그러려니와 앞으로의 장래성을 생각할 때도 시골학교 선생보다는 훨씬 그 쪽이 나아 보였다. 그러나 나는 그의 권유를 사양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살아야지…… 운운하며 나는 그의 권유를 뿌리쳤다. 그러나, 그의 권유를 마다한 속사정은 다른 데 있었다. 나는 그 당시 일종의 대인기피증을 앓고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였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었지만(이것도 나의 무의식이……?), 그 때는 낯선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죽기보다도 싫었다. 그런 나에게 호텔 매니저를 하라는 것은 곧 죽으라는 말과 다름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19년이라는 ‘포정의 시간’이 흐른 뒤 우리는 많은 것을 서로 바꾸어 살고 있었다. 거의 180도로 바뀐 것도 있었다. 친구는 19년 전에 내가 그에게 털어놓지 못했던 사연(대인기피증)을 담담하게 털어놓는 것으로 우리의 작별을 기념했다. 더 이상 직업을 옮길 수 있는 여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일이 있어도 이제는 말뚝 박을란다…… 그런데……, 이젠 사람 만나는 일이 자꾸 무서워지니…… 향후 5년만이라도 보장이 된다면 아무런 걱정이 없겠다…… 떠나는 우리 일행을 보내며, 그는 그렇게 말했다.
노군이 문제였다. 그는 좌충우돌, 엉뚱한 데까지 포정을 보내 나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그가 포정을 보내 나를 감시하게 하지 않았다면, 지난 주말에 만난 친구에게 19년의 의미에 대해서 내가 그렇게 장황하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 그리고, 친구의 여린 가슴에 상처도 내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 무엇을 하느냐는 결국 문제가 아니라는 거지…… 일과 삶을 어떻게 혼연일치의 경지로 밀고 나가느냐가 문제라는 거야…… 그건 결국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로 귀결되는 거겠지만…… 내가 그에게 장황하게 떠벌린 말이 무슨 의미가 있었던가? 그 말을 듣는 친구의 표정을 생각해 보자…… 그는 거의 일그러진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내 말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난 후 그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가 어떤 것이었는가……
노군이 이 모든 혼란의 사단을 제공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왜 그는 갑자기 나에게 포정을 데려왔는가? 그러나, 그는 막무가내였다. 그는 아예 포정으로 나를 꽁꽁 묶어버릴 심산인 것 같았다. 바로 얼마 전에도 마치 처음인 것처럼 불쑥 포정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것이었다.
“김사범, 칼이 너무 자주 상하는 것 같아요. 포정이라는 사람은 19년 동안 매일같이 소를 잡았으면서도 한 번도 칼을 갈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사람 말로는 3년이 지나자 칼날이 상하지 않는 경지가 보이더라는 겁니다.”
노군은 운동을 마치고 나란히 샤워장으로 들어가는 길에 그렇게 말했다. 내 칼이 자주 상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지만, 요즈음 사용하는 중국산 죽도는 특히 여물지가 못해 한 주가 멀다하고 파편이 나기 일쑤였다.
“중국산이라서 그런지 죽도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하려던 참이었다.
“그건 죽도 탓이 아니지요. 칼의 강약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칼쓰는 경지는 칼쓰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지 칼 그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노군은 나의 ‘칼쓰는 경지’를 말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전혀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였다. 그가 언제부터 나에게 ‘칼쓰는 경지’를 이야기할 입장이 되었던가? 오늘 시합에서 큰머리를 한 번 정통으로 맞춘 것이 화근인가?
근 10년째 검도를 같이 하고 있는 노군은 나보다 3년 연상이다. 고등학교 3년 선배라 나는 그를 선배님이라 부른다. 그는 이제 50이 내일 모레인 40대 후반 길이라 기력에서는 나를 따라 오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잘 흔들리지 않는다. 큰배는 한 번의 큰 파도에 넘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작은 파도를 많이 보내면 결국 아무리 큰배라도 넘어가게 되어 있다. 문제는 내가 흔들리지 않으면서 상대를 흔드는 것이다. 큰사범께서 언젠가 그렇게 말씀한 적이 있었다. 현재로는 노군과의 시합에서 내가 이길 확률이 대략 삼사 할 정도일 것이다. 세 판에 한 판 꼴로 그는 나에게 진다. 최근의 흐름으로 본다면 그 확률은 점점 높아질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아직은 힘이 많이 쓰이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포정을 데리고 온 후부터 노군은 나와의 시합이 끝나면 반드시 한 마디씩 토를 달았다. 좋은 손목치기는 오른 팔과 왼팔 사이의 역학관계를 어떻게 몸의 전체 리듬과 조화시키느냐에 전적으로 달려 있지요. 김사범은 팔과 몸이 너무 붙어 있는 것 같군요. 손목을 맞고 진 후에 그렇게 말하기도 해 김을 뺀 일도 있었다.
“제가 너무 칼을 막 다루는 것일까요?”
사범들이 쓰는 죽도는 검도교실에서 무상으로 공급하기 때문에 오히려 불편했다. 노군은 1년에 고작 한 두 번 갖다 쓰는데 나는 한 달에 두어 번씩은 꼭 갖다 쓰니 여간 안쓰러운 것이 아니었다. 돈을 주겠다고 해도 막무가내, 체육부의 처녀 간사 이선생은 그저 생글생글 웃으며 죽도를 갖다 주지만 눈치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칼이 아니지요.”
노군은 씩 웃으며 그렇게 대답했다.
“칼이 아니면…”, 사람이 아니겠는가? 노군은 내가 사람을 함부로 대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야기가 그렇게 진행되자 내가 할 말이 없어졌다. 큰사범이 어떤 분인가? 그분에게 10년 동안 검도를 배워 오면서 들은 꾸지람만 하더라도 책으로 서너 권은 족히 되었다. 노군 자신도 마찬가지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그런 큰사범에게도 여태 그런 식의 평가는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포정해우의 경지를 지향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노군은 나의 그런 심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또 포정을 들먹이며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노군의 말은 그냥 넘기기가 어려웠다. 그는 이를테면 내가 넘어야 할 장애물이다. 그가 있는 곳을 뒤돌아볼 수 있는 자리, 그 자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현재로는 나의 급선무였다. 최근 들어 더욱 그런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내가 처음 큰사범님의 도장을 찾아 검도에 입문했을 무렵 그는 거기서 마치 조교와 같은 역할을 맡고 있었다. 모든 운동이 다 그렇겠지만, 검도 수련에 있어서도 한 걸음 앞서 있던 사람을 추월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결국은 시간인 것이다. 내가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검도에 투자한다면 그를 못 넘어설 이유가 없다. 나이도 나이지만, 그는 나보다 훨씬 빨리 지친다. 가능성은 충분히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자신이 한 발짝 앞에서 걷고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다. 포정을 보낸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노군에 대한 나의 감정이 장애물이라는 말로만 요약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검도를 떠나서도 그는 나에게 의미심장한 사람이다. 노군은 가끔씩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데가 있는 사람이다. ‘심금을 울린다’는 것은 내 나름의 평가 기준에 따르는 것이지만, ‘본받을 만한 데가 있는 사람’이란 내포도 지닌다. 그는 여러면에서 나보다 한 걸음 앞서 간다. 간혹, 같이 의논해야 할 일도 혼자 생각해서 쉽게 처리할 때도 있어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들 때도 있지만, 그 바탕도 따지고 보면 그의 말대로 ‘선의지(善意志)’에 닿아있는 것이었다. 내가 그를 ‘극복’한다는 것은 그러므로, 나의 장점에 그의 장점을 융합시키는 것을 뜻한다. 내가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 한 언젠가는 그 경지가 올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노군의 말을 그냥 넘길 수 없었던 것은 그런 까닭에서였다. 그가 아는 경지를 모르고서는 그를 따라잡을 수 없는 법, 포정 이야기를 처음 듣고 나서 바로 그 다음날 장자(莊子)를 서점에 가서 샀다. 장자는 처음 읽는 책이다. 검도를 배우면서 몇 마디 얻어들은 것은 있지만 실제로 읽는 것은 처음이었다. ‘포정해우’는 일종의 우화였다. 포정이라는 신기에 가까운 기술을 지닌 숙수(백정)의 이야기를 통해 군주에게는 치자의 도를, 그리고 일반인들에게는 처세의 방도를 가르치고 있었다. 검도에서도 그런 가르침은 많이 있었다. 큰사범님이 강조하는 ‘삼무(三無)의 검’, 즉 ‘무무리(無無理)’, ‘무무도(無無道)’, ‘무무법(無無法)’의 칼쓰기가 바로 그런 내포를 지닌 것이었다. 포정이 말하는 것은 바로 무리 없는 칼쓰기였다.
“결국은 무무리(無無理)라는 말이더군요.”
운동을 마쳤을 때, 내가 노군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관원들과의 연습에서 무리를 했는지, 노군의 걸음걸이에서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게 봤습니까?”
노군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렇게 반문했다. 그게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기술보다는 도(道)에 이르러야 한다. 정신으로 소를 대한다. 천리에 따라 두께 없는 것을 틈새에 넣는다. 그런 것들이 결국 무무리하고 통하는 것 아닌가요?”
“물론 통하지요. 어떤 칼쓰기든 칼쓰기가 도를 지향하는 한 삼무의 경지를 거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포정해우는 그런 것들과는 다른 쪽에서 칼쓰기를 바라보는 것 아닐까요?”
다른 쪽에서 바라본다?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 쪽에서 반응이 없자 그가 다시 말했다.
“포정의 고사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장자가 그의 소잡는 행위를 묘사한 부분입니다. 소를 해체하는 데서 나오는 소리가 음악과 같았다는 부분 말입니다. 그 다음에는 소잡는 작업을 마친 뒤에 포정이 보이는 태도가 또 마음에 듭니다. ‘칼을 들고 일어서서 둘레를 살피고 떠나기가 싫어 잠시 머뭇거린다’는 대목 말입니다. 그건 포정의 칼쓰기가 어느덧 자기 해방의 경지에 들어가 있음을 말한 거라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도 바로 그런 경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듣고 보니 그 대목이 꽤나 인상적이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랬었군…… ‘포정해우’를 읽고 나서 무언가 또 다른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지……
“저에게도 그 부분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즐기는 검도’를 지향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언젠가 큰사범님이 말씀하신 적도 있지만……”
“그렇습니다. 즐기는 검도지요. 다만, 포정은 그 즐거움을 자기 자신에게서만 찾지 않고 상대에게서도 찾았다는 겁니다. 단순한 대상(對象)이 아니라 상대(相對)라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건 이미 해방적 관심의 영역에 들어가 있는 상태지요.”
“해방적 관심이요?”
노군이 하는 말이 알 듯 모를 듯 가물가물 했다. 대상이니 상대니 하는 것도 그랬고, 해방적 관심 운운하는 것도 그랬다.
“몸이나 씻고 나옵시다. 이야기는 맥주나 한잔하면서 하기로 하고.”
노군이 땀에 젖은 도복을 벗으며 말했다. 그의 몸은 나이와는 반대로 간다. 처음 검도에 입문하던 시절 그는 80㎏에 육박하는 체중 때문에 허리와 관절에 통증이 와서 애를 많이 먹고 있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러던 그가 지금은 어디 하나 군살 붙은 데가 없다. 내가 보기에는 아주 보기가 좋은데 뱃살이 빠지지 않는다고 그는 매일 같이 엄살을 떤다.
“칼을 내리지 말고 그냥 찔러 들어가 보세요.”
노군이 뒤따라 들어오는 한 관원에게 그렇게 말했다. 치려는 마음이 앞서면 몸이 들어오기 전에 칼이 먼저 움직이기 마련이다. 그래서는 상대에게 기색이 노출되어 성공적인 타격을 가할 수가 없었다.
“칼 들고 서 있는 것만 해도 힘들어 죽겠습니다. 아무 생각이 없어요……”
누군가 했더니 보건대학에서 보건행정학을 가르친다는 이교수다. 50이 넘은 나이에도 근 1년째 열심히 운동을 하는 분이었다. 오늘은 노군과 혈투를 벌였다. 노군이 오랜만에 진면목을 보이는 것 같았다. 그는 한때 ‘공포의 사(死)번 타자’였다. 우리가 호구를 막 착용했을 무렵 조교 역할을 하던 그는 사정없이 후배들을 몰아세웠다. 머리를 맞으면 골이 흔들리다 못해 온몸이 다 울렸고, 손목과 팔뚝에는 늘 피멍이 떠나질 않았다. 오늘 노군은 오랜만에 옛날 식으로 이교수를 바짝 따라다니며 멍석말이를 했다.
“그래도 힘들 때가 좋지 않습니까? 정신없이 운동하는 맛도 나고요.”
“그건 그런데…… 너무 힘들어요.”
“그래도 다들 이교수님을 피하는 눈치던데요? 사정없이 때리신다고……”
이교수는 칼이 거칠다. 맞는 것을 괘념치 않고 순서 없이 붙어서 같이 때리고 보는 것이 그의 검법이다. 한 번은 그에게 손목을 맞은 적이 있는데 1주일 동안이나 통증이 지속된 적도 있었다. 노군은 그런 이교수에게 이열치열의 교훈을 준 셈이었다.
“아이고, 여태 때린 것 오늘 탕감 다 했습니다. 아무 생각도 없어요……”
이교수는 아무래도 노군에게 앙금이 조금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아무 생각이 없다는 말만 계속했다.
“그래도 멍든 데는 없는데요?”
노군이 웃으며 그의 몸을 훑었다.
“지금 머리 밑에 아무런 감각이 없습니다. 머리카락이 붙어 있는지도 모를 지경이라니까요?”
이교수도 마지못해 씨익 웃으며 대꾸를 보냈다.
노군과의 대작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는 가까운 곳에 사는 아이들을 자기 차로 데려다 준다. 그 아이들을 태우며 노군은 따로 한 번 시간을 내자고 했다. 나도 그러마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포정해우’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갑자기 노군이 거대한 벽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는 어떤 때는 따뜻하지만 어떤 때는 얼음처럼 차다. 올림픽 기념관의 검도교실은 저녁 7시에 문을 연다. 그는 항상 6시 무렵이면 도착해서 바닥을 점검한다. 여러 운동 시간이 함께 쓰는 강당이라 매번 번거롭다. 농구 골대도 치워야 하고, 배트민턴 공의 흩어진 날개쭉지들도 쓸어야 하고, 운동화에서 떨어진 흙먼지나 작은 돌조각들을 주의 깊게 밀대로 밀어내야 한다. 행여 행사가 있었던 다음에는 깨어진 병조각까지 나뒹구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사전 점검이 필수적이었다. 검도는 맨발로 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바닥 상태를 미리 점검하지 않으면 부상의 위험이 있다. 노군은 그런 일에 충실하다. 같은 사범이지만 나는 그런 여유를 낼 수가 없다. 나는 가끔씩 학교 일로 결석도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그러나 그는 결석을 모른다. 그는 언제나 먼저 와서 단정하게 도복을 입고 관원들을 맞는다. 그런 노군을 보고 차가움을 느낀다면 내가 잘못된 것일까. 나는 그러한 그의 수학 공식과도 같은 삶이 부담스럽다. 사람은 누구나 빈틈이 있기 마련이다. 만약 자기에게 그런 것이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빈틈을 가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야 남이 나에게 들어올 공간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노군에게서는 그런 빈틈을 찾기가 어렵다.
‘포정해우’도 마찬가지다. 포정은 장자가 만들어 낸 인물이다. 그건 하나의 이상적인 경지일 뿐이다. 과장법의 극치, 하나의 우화일 뿐이다. 실제라고 해도 그런 인물은 세상에서 오직 한 사람만 존재할 수 있을 뿐이다. 예수나 석가처럼…… 그렇지 못한 우리는 그저 1년에 한 번 정도 칼을 가는 양포(良庖)를 지향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노군은 우화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건 현실과 환상 사이의 경계를 해체하는 일이다. 그나 나나 칼잡이로 치자면 기껏 족포(族庖)에 지나지 않는다. 기껏해야 사회인 검도에서나 우쭐거리는, 자기 동네에서나 소 잡는 기술을 뽐내는 족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전문적인 선수 생활로 시작해 30여년 이상 검도인으로 살아온 큰사범정도라면 모르겠다. 그런데 노군은 나더러 포정을 지향하라고 한다. 해방적 관심이라는 마치 운동권 용어같은 말까지 동원해서 나를 혼란에 빠뜨린다.
그러나 석연치 않은 것이 있다. 사실은 그것 때문에 ‘포정해우’가 계속해서 내 마음을 짓누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건 내가 스스로 내 약점을 자인하지 않으려는 어떤 심리적 에너지의 지배를 받고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다. 도둑은 뒤로 잡아야 한다고, 정면에서 나를 부정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언제나, 아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뻔히 알면서도 자기부정을 용인하지 못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던가. 노군이 말하고 있는 것을 이미 나도 알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스스로 그 쪽으로는 생각하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행여 그렇다면 그건 참담한 일이다. 10년 공부 도로아미타불이라고, 그 동안 내가 검도에 쏟아 부은 정열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거였다. 검도가 왜 좋은가. 평생을 해도 하나의 완성을 볼 수 없다는 것 아니었던가? 매번 그 때까지의 자기를 부정하지 않으면 도(道)로 나아갈 수 없다. 소박한 경험과의 작별, 자신의 경험에 집착하는 것은 곧 정체(停滯)를 뜻한다. 그런데, 노군의 말에 이렇듯 마음이 흔들리는 까닭이 무엇인가?
노군은 평소에 잘 쓰지 않던 연속기(連續技)를 많이 사용했다. 선공(先攻)은 거진 손목-머리로 들어왔고, 붙었다가는 이내 머리-허리로 퇴격(退擊) 기술을 걸었다. 마치 공격 연습이나 하듯 틈을 주지 않고 선공으로 나왔다. 나는 대체로 발동이 늦게 걸리는 스타일이다. 특히 노군과 같은 호적수를 상대할 때는 더욱 그렇다. 일격필살로 단칼에 승부를 결정지으려면 상대의 호흡을 완전하게 파악해야 한다. 상대의 박자를 알고 그 박자의 틈새를 노려 벼락같이 큰머리를 치거나 아니면 상대의 호흡을 밟고 들어가 짧은 손목을 강하게 내려친다. 노군도 그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아마 선공으로 나오는 것일 것이다. 노군이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대개 이런 경우 내가 그를 흔들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의 반응을 주시하면서 반걸음 정도 앞으로 나갔다. 그러자 마치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노군도 같이 한 걸음 쓰윽 들어와서는 찌르듯이 손목을 치고 다시 이내 몸을 날렸다. 머리 위로 가벼운 파열음이 스치고 지나갔다. 언제 치고 지나갔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한판을 빼앗긴 것이다. 노군은 길게 잔심(殘心)을 보였고 나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한판을 인정했다. 그런데 다시 마주한 노군의 눈에서 예전에 느낄 수 없었던 느낌을 받았다. 한판을 먼저 뺏은 노군의 눈에서 노오란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이건 처음 느끼는 건데……, 그 순간 다시 손목에 철썩하고 노군의 칼이 와 앉았다. 마치 풀로 붙여 놓은 듯 죽도가 내 손목을 휘감고 있었다. 어느새 그의 호면이 내 호면에 닿아있었고, 그 속에서는 여전히 노군의 불타오르는 시선이 내 눈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었다. 허탈했다. 나는 그와의 승부에서 계속해서 승률을 높여가리라고 다짐하고 있었고, 최근에는 그럴 가능성에 대해서 거의 확신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속수무책으로, 공격 한 번 해 보지 못한 채, 너무 일찍 끝이 났다.
“한판 더 하실까요?”
노군이 내 심정을 읽었는지 그렇게 말했다.
“좋습니다.”
다시 칼을 중단세로 가져가는데, 좌우로 도열해서 우리의 시합을 관전하는 관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행여라도 저들의 눈을 의식해서는 안된다. 승부도 의식해선 안된다. 무념무상, 오로지 상대의 눈을 잡고 있어야 한다. 언제나 상대를 내려다보는 마음으로……
노군이 두 번째 시합에서는 정중동(靜中動), 기다리는 칼로 나왔다. 밀고 들어가면 그만큼 물러서고 나의 발걸음이 멈춘다 싶으면 이내 반 족장(足長) 정도 밟아 들어왔다. 그러나, 첫 번째 시합에서처럼 칼을 쉽게 날리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만큼 내 쪽에서도 좀처럼 틈을 잡을 수 없었다. 거리만 재어서 무작정 들어가다가는 노군의 칼이 가차없이 목으로 들어온다. 그의 중단세가 위력이 있다는 것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얼마 전 다른 지역의 고수들이 친선 방문한 자리에서도 노군의 중단세가 호평을 받은 적이 있었다) 점점 숨이 막혀 왔다. 며칠 사이에 이렇게 칼이 변하다니……,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지루한 시간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순간, 노군의 눈길에서 활활 타오르던 불꽃이 갑자기 사그라든다는 느낌이 왔다.
“아앗!”
온몸을 박차고 나가면서 칼을 날렸다. 노군의 머리가 큰 쟁반처럼 눈에 잡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그의 죽도가 내 칼을 스치며 올라가고 있었다. 잘 친 허리를 맞는 경험은 참 허망하다. 그야말로 온몸이 두 동강 나는 기분이다.
“허릿!”
소리는 잠시 뒤에 들렸다. 노군은 이미 돌아서서 잔심을 보이고 있었고, 일부 속없는 관원들은 박수까지 치고 있었다.
“그만하시지요.”
노군은 허망하게 서 있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흘러 있었다.
좌선을 마치고, 샤워를 하고, 어떻게 옷을 간추려 입었는지 강당 문을 나설 때까지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노군이 구내 식당에서 맥주나 한잔하자고 제안했다. 아이들에게는 이미 마실 것이 한 깡통씩 들려져 있었다.
“오늘 정말 선배님 칼에서 배운 게 많습니다. 평소에도 그런 칼을 자주 보여주셨다면 저도 많이 배웠을텐데요……”
노군은 술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입가심으로 맥주를 마신다. 갈증을 해소하는 데에는 맥주만한 것이 없었다. 노군이 우물우물 맛없이 맥주를 삼키면서 고개를 저었다.
“김사범 칼이 점점 무서워져요. 마치 진검 앞에 서 있는 기분이랄까, 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이게 무슨 뚱단지 같은 소린가? 오늘은 나의 완패였다.
“자꾸 그러시면 제가 낯을 들 수가 없습니다. 오늘 선배님 칼은 거의 완벽했습니다.”
“포정처럼?”
노군이 씨익 웃었다.
“포정이야 소 잡던 친구였고, 우리야 소 잡을 일은 없잖아요?”
노군이 또 포정을 들먹이는 것에 내가 딴지를 걸었다. 그의 생각을 좀 알 필요가 있었다.
“그렇지, 그 사람은 백정이었지. 미천한 백정에게도 나름대로의 칼쓰기 도(道)가 있다는 이야기지.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소 대신 사람 잡는 칼쓰기라고나 할까……”
“그건 다르지요. 포정은 직업이 소 잡는 일이었고, 우리가 하는 검도는 직업적인 칼쓰기라고는 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요. 그렇지만 포정의 칼쓰기 경지도 직업적 차원, 그러니까 기술적 관심에 머무르는 것은 아니었지요. 그는 그것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어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해방적 관심에 해당되지요. 그런 점에서 나는 포정의 칼쓰기가 검도의 정신을 반영한다고 봐요.”
노군이 또 해방적 관심을 들먹였다. 그렇지 않아도 나는 그의 생각이 궁금했던 터였다.
“선배님이 말씀하시는 해방은 이를테면 자기초월을 뜻하는……?”
“그렇지요. 자기초월이나 인간구원 같은 것은 모두 그 영역에 속하는 것이겠지요. 인간의 인식관심은 기술적, 실천적, 해방적 영역으로 나뉠 수 있다고 누가 말했다지요? 그걸 좀 거칠게 연결하면, 족포, 양포, 포정의 경지가 그 세 영역에 부합되는 것이 될 수도 있지요. 일전에 김사범이 무무리(無無理)와 포정의 경지가 일치하는 것 아니냐고 말씀하셨는데, 무무리는 그 자체만 두고 볼 때, 아직 해방적 관심으로 나가지 못한 경지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요. 실천적 관심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해방적 관심은 인간이 겪는 고통의 해소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니까……, 자기완성이랄까, 수양의 차원과는 또 다른 차원일 수도 있는 문제겠지요.”
노군이 가만히 내 얼굴을 주시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그건 종교적인 차원이었다.
“그 문제하고, 제 칼이 자주 상하는 것하고는 어떤 연관이 있는지……?”
사실은 가장 먼저 묻고 싶은 말이었지만 이제서야 말이 나왔다. 노군은 또 씨익 웃었다.
“그거야 포정이 19년 동안 칼을 한 번도 갈지 않았다는 말에서 설명이 다 되잖아요?”
“그렇지만, 타격감이 좋으려면……?”
우리가 쓰는 것은 소 잡는 칼이 아니라 죽도였다. 죽도는 베는 칼이 아니라 때리는 칼이었고 늘상 강조되는 것이 ‘힘있는 타격’이었다. 그런데 죽도가 제 힘에 부쳐 부러지는 것이 무슨 흠이 되겠는가? 나는 그렇게 반문하고 싶었지만 그저 타격감이라는 말만 했다.
“굳이 나눈다면, 타격감도 내가 느끼는 것, 상대가 느끼는 것, 나와 상대가 같이 느끼는 것, 나와 상대와 관중이 같이 느끼는 것 등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요. 가령, 나와 관중은 좋은데 상대가 싫은 타격감도 있을 것이고, 나는 좋은데 상대나 관중들 모두 싫은 것도 있을 것이고……, 내가 포정을 동경하는 것은 그 모두가 그의 칼 쓰기에서 해방을 경험한다는 거지요. 이건 억측이지만, 포정의 손에서 해체되는 소들도 모두 포정처럼 해방을 경험했을 겁니다. 포정은 상대를 존중했으니까요.”
“맞는 상대방도 기분이 좋아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그런 말은 늘상 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좋은 칼은 맞을 때 기분이 좋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노군에게서도 그런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오늘이 그 대표적인 경우가 될 것이다.
“결국 그 말이겠지요. 그러나, 내가 김사범에게 하고 싶었던 것은 단순히 그런 뜻이 아니라……”
노군이 말을 줄였다. 그도 충고의 한계를 아는 사람일 것이다. 이런 때 기다리는 것은 자신에 충실한 태도가 아니다.
“말씀을 해 주시죠. 제가 어떤 점을 고쳐야 하는지.”
노군은 잠시 뜸을 들였다.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소란스럽게 떠드는 것을 잠시 귀동냥하는 시늉을 짓기도 했다. 그리고는 마지못한 표정으로 충고를 꺼냈다.
“나를 어떻게 완성할 것인가에만 몰두하면 그 이상을 볼 수가 없습니다. 진정한 나의 완성을 도모하려는 자는 항상 상대를 가져야 합니다. 상대를 포함하지 않는 완성은 없다는 거지요. 그러기 위해서 누가 상처를 내며 외부로 통하는 길을 뚫어주는 것을 진심으로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지요. 검도가 비록 살상의 기술에서 출발했지만, 도를 표방하며 지향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서로를 살리는 경지가 아니겠습니까? 고통의 해소지요. 우리가 왜 그런 고통스런 수련과정을 겪었습니까? 지금도 순간 순간 왜 숨이 끊어지는 듯한 고통을 즐거이 감내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보다 큰 고통, 어쩌면 인간의 조건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 원초적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김사범 칼을 두고 내가 이러쿵저러쿵 말할 입장은 아니지요. 그렇지만 내 생각에는 김사범 칼이 이제 그 경지에 들어설 길목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노군이 말을 마치고 내 눈치를 살폈다. 명료하게 윤곽이 잡히는 말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건 인생관에 관련된 문제인 것 같았다. 느낌이지만, 노군은 사람이 바뀌어야 칼도 바뀐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가 바라는 ‘나의 변화’는 어떤 내용인가? 내가 그를 모르듯이 그도 나를 모른다. 그러나, 그는 ‘나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예…… 여러 가지로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만, 뜻대로 잘 되지 않는 것이 워낙 많아서……, 말씀 잘 들었습니다.”
나는 왠지 등골이 오싹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표현을 많이 숙지게 한다고 했는데도 그렇게 대꾸가 나오고 말았다. 노군은 그저 빙긋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노군에게 완패한 것도 그렇고, 그에게서 쓴 소리를 들은 것도 쉽게 다독여지지 않았다. 늦은 저녁을 먹고 건성으로 석간 신문을 뒤적이는데 아내가 설거지를 마치고 커피를 끓여 옆으로 왔다.
“오늘 미장원에서 들은 건데요, 당신, 엘비스 프레슬리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요? 매일 밤 도우넛츠를 여남은 개씩 먹다가 그만 죽었다는 거예요. 그게 다 욕구불만에서 나온 거라던데…… 당신도 그 버릇 빨리 고쳐야겠어요. 예사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아내는 앞으로는 일절 간식거리를 사놓지 않겠다고 다짐을 놓았다. 욕구불만의 엘비스 프레슬리라…… 그에게는 어떤 욕망, 어떤 불안이 있었을까……? 그건 아마 외로움일 것이다. 외로움만큼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무엇인가 많이 가진 자의 엄살일 수도 있다. 외로움 없이는 단련도 없는 법…… 아내는 여전히 무엇인가를 설파하고 있었지만 나는 뜬금없는 생각의 산책로를 따라 걷고 있었다.
“설탕 타는 걸 잊었네.”
아내가 커피잔을 들어 먼저 한 모금 마시더니 그렇게 말하면서 부엌 쪽으로 걸어갔다. 설탕을 가지러 가는 모양이었다. 커피는 역시 썼다. 예전에는 원두커피만 고집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인스턴트가 아니면 마시지 않게 되었다. 아내가 커피잔에 각설탕 두 개를 넣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포정을 생각했다. 그에게는 불안이 없다. 그건 욕망도 없다는 뜻이다. 그런 그에게 무슨 뜻이 있단 말인가. 그런데 노군은 그런 포정을 이웃집 남자 이야기하듯 들먹인다. 그건 그를 닮으라는 뜻이다. 노군은 과연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일까……?
아내는 이제 친구가 한 달에 식품 재료비로 지출하는 돈의 액수가 생각보다 꽤 크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건 그 날 같이 들었던 말이었다. 식품 재료를 구입하는 것이 말보다 쉽지 않더라는 말도 들었다. 한 번 구매선을 바꾸면 당장 본사로 투서가 날아들고, 대개 그런 일이 있으면 사표를 써야 한다고 했다. 가급적이면 싸고 좋은 품질을 찾아야 한다고 매번 닥달이면서도 투서 한 장이면 모든 게 끝이라고, 그래서 전임자도 결국 옷을 벗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친구는 무슨 일이 있어도 거래선상에서 오점을 남길 일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우리는 그래야 말고, 덩달아 다짐을 놓았다. 그랬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주말에는 19년만에 귀향한 그를 불러 저녁이나 함께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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