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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의 빈터

맑은 행복을 위한 345장의 불교적 명상

by 고요의 남쪽 2010. 6. 22.

83. 무정설법無情說法

有情이니 無情이니 하며 힘들게 가릴 게 없다. 유정도 무정도 한 몸이다. 이광수도 <무정>이라는 소설을 쓰더니 또 <유정>이라는 소설을 쓰지 않았는가. 물질이 일정한 수준에 오르면 생명이 되고, 생명이 일정한 수준에 임박하면 정신이 된다. 유정이 언어로 설법을 한다면 무정은 몸으로 설법을 한다. 인간이 문장으로 설법을 한다면 동물은 소리로 설법을 한다. 무정도, 유정도, 인간도, 동물도 본향은 원자의 세계이자 거대 우주 자체다. 인연 따라 현상이 다르게 나타났을 뿐이다. 그러고 보면 여름날 찾아온 잠자리가 무정설법을 하듯, 어제 저녁  잠자리에 깊이 들다 잠꼬대를 한 나도 무정설법을 행한 것이다. 그것을 듣느냐 듣지 못하느냐, 자각하느냐 자각하지 못하느냐 하는 것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여름날 잠자리는  어제 저녁 잠자리와는 다르다. 앞엣 것은 공중에 있고 뒤엣 것은 방안에 있다. 방 안 이부자리가 일정한 수준에 이르면 잠자리가 되나. 그렇다면 일정한 수준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나. 공중을 나는 잠자리가 일정한 수준에 임박하면 정신이 되나. 그렇다면 일정한 수준은 얼마나 많은 설법을 들어야 하나. 늦은 잠자리에서 일어난 외손자에게 잠자리 한 마리 잡아 준다. 날개 투명하고 몸 가볍다. 외손자 맑은 눈을 잠자리 큰 눈이 두리번거린다. 무정설법이다. 잠자리를 하늘로 놓아준다. 잠자리 설법을 잘 들었다는 증거이다.(2010. 6.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