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가난한 방으로 돌아온다. 바깥이란 무엇인가? 바깥이란 ‘상처 주고’ ‘상처 받는’ 말의 세계 아닌가. 이 가난한 방은 그러니까 내가 바깥에서 도망칠 유일한 곳이다. 이 가난한 방은 나의 ‘성소’이자 ‘말이 필요 없는’ 곳이다. 내 몸은 여기서 휴식하고 여기서 바깥에서 얻은 상처를 핥는다. 그리고 말없이 저 바깥을 용서한다. 내게 상처 준 바깥을. 그래, 나는 이 가난한 방에서, 축축이 젖는 눈을 가진다. 바깥에서도 축축이 젖은 눈을 가지길 희망 한다.이 가난한 방에서 나는 입술을 닫는다. 마음에 푸른 등불을 하나 켠다. 누렇게 바랜 책처럼 벽에 기댄다. 두 손을 천천히 편다. 손에 묻은 바깥의 기억을 얼굴에 문지른다. 이 세상의 한 모퉁이에 살고 있는 존재들과, 이 세상 한 모퉁이에서 죽어가는 존재들과, 이 세상 한 모퉁이에서 태어나는 존재들을 생각한다. 달에게로 가는 새들을 생각한다. 연녹색 이파리를 제 몸에서 게워내고 우두커니 서있는 나무를 생각한다. 햇살 받아먹어 몸이 기쁜 존재들을 생각한다. 달에게로 가서 달의 나무가 될 수는 없지만, 해에게로 가서 해의 나무가 될 수는 없지만, 이 가난한 방에서 나는 꿈꾼다. 바깥에서 발설할 수 없는 언어를 내 안에서 키우고, 갈망하고, 잉태하길. 돌이 뜨거워지는 여름 곧 온다.(To The West/Oriental Express Vol.1) [출처] 이 가난한 방에서의 영원한 책읽기, 혹은7|작성자 일뤼마시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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