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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의 곳간

쓸쓸함의 아래턱이 부슬부슬 한겨울 쪽으로 무너지는 소리

by 고요의 남쪽 2010. 6. 3.

한도 ․ 21



느티나무 가지 끝을 기어 나온 딱정벌레가 딱딱한 초승달을 갉아먹는 소리 크고 환하게

쓸쓸함의 아래턱이 부슬부슬 한겨울 쪽으로 무너지는 소리 점점 더 크고 점점 더 환하게


어떤 유리병은 ‘퍽’하며 깨어진다. 깨어진 유리 조각에 어울리지 않는 소리이다. 어떤 유리병은 깨어질 때 ‘퍽’하는 소리를 낸다. 높은 별빛 소리를 다독이는 낮은 달빛 소리이다. 어떤 유리병은 ‘퍽’하는 소리를 내며 깨어진다. 그것은 가슴 치는 소리 같기도 하고, 아닌 밤중에 홍두깨가 벌떡 일어나는 소리 같기도 하다. 부슬비에 부슬부슬 부서지는 머나 먼 모래밭, 언어의 자궁에 대한 그리움의 둔탁한 주먹이 퍽! 어떤 유리병을 깨뜨렸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