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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의 빈터

맑은 행복을 위한 345장의 불교적 명상

by 고요의 남쪽 2010. 3. 14.

16. 시비지심是非之心

가치론 앞에 서면 늘 막막하다. 너무 어려워 항복하는 병사처럼 두 손을 들고 무릎을 꿇은 지가 오래 되었다. 무엇이 더 가치 있는지 말할 수가 없다. 생각할수록 모든 것의 값을 매길 수가 없다. 다만 諸法이 空相이라는 '空의 이론' 앞에서 잠시 힌트를 얻고 환해진다. 그리고 불가의 첫 계율인 '不殺生'의 심오한 뜻을 참구하며 기뻐한다. '살림의 마음', '살림의 길'에 서 있는 것이라면 우선은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소박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불상생은 생명의 죽임뿐만 아니라 정신적 죽임도 경계하는 말이라 받아들인다. 지금까지 너무 많은 것을 직, 간접적으로 사살했다. 죽인 것만큼 살려내는 일이 다가올 날들의 과업이고 묵은 숙제이다

▣  "죽인 것만큼 살려내는 일이 다가올 날들의 과업이고 묵은 숙제이다." 정효구 교수는 내 여생의 화두를 대신 말해주고 있다. 삼년불비三年不蜚라는 중국 초나라 때의 고사가 있다. 삼년 동안 죽은 벌레처럼 엎드려 있다가, 세상을 읽기 위해 삼년 동안 자신을 벌레처럼 내동댕이 쳤다가 마침내 삼년이 지난 어느 날부터 홀연 뜻을 펴 治國 平天下한다는 이야기이다. 삼년전 나는 전갈들에게 물려 살해 당했다. 평생을 시인으로, 교육자로, 마침내 한 대학의 수장으로 살아 온 내게는 그랬다. 최고의 가치도, 버릴 수 없는 재산도 '다름 아닌 명예'였다. 악마의 독을 가진 전갈들에게 물려 내 사회적 생명은 사살되었다. 이제 죽은 내 생명을 살리는 일이 다가올 날들의 과업이고 묵은 숙제가 되었다. '空의 이론'이 어찌 내 비굴과 유약의 피난처가 될 수 있겠는가. 무엇으로도 나의 죽음을 합리화할 수는 없다. "그때 당신은 당신의 죽음 앞에서 무엇을 했는가?" 라고 물었을 때 더듬거리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생명마져 지켜내지 못할 때 '살림의 마음'이란 한갓 수사일 터; 올해는 그때 그 蘭들이 한거번에 다섯 분이나 꽃을 피웠다. 아내가 瑞氣의 도래라고 말하기 전에 내가 그렇게 말해버렸다. 삼월에 폭설이 내리고, 나는 마침내 내 삶의 과업과 묵은 숙제를 위해 출사표를 던졌다. 벌레의 삼년 동안 나는 가장 가까운 이웃이 , 가까움을 가장한 이웃이 견디기 힘든 적이라는 세태를 읽었다.  세태의 텍스트와 삼년불비의 추동력이 되어준 적들에게 감사(?)한다. 여호수아를 만나게 해 주신 저 위의 분에게 감사(!) 한다. (2010. 3.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