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녹색연구원chaii

뿌리

by 고요의 남쪽 2018. 9. 1.

뿌리

마곡사麻谷寺

 

마곡사 돌계단에 앉아 잠자리들이 걱정 없이 노니는 것을 바라본다. 고요하기 그지없는 늦여름 평일 저녁 무렵의 주인공은 단연 하늘의 잠자리들이다. 잠자리들처럼 몸이 가벼워지려면 무주無住의 공덕을 한없이 베풀어야 하리라. 여기저기 머무느라 우리 몸엔 날개가 돋을 틈이 없다. 그저 뒤뚱거리는 몸으로 우왕좌왕하다 가금씩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이 고작이다.(정효구)

 

모든 뿌리는 쓸쓸함의 어미이다. 모든 뿌리는 빗소리에 젖은 땅, 정지된 시간의 육체이므로. 쓸쓸함의 깊이는 뿌리의 깊이이다. 뿌리 없는 존재, 뿌리 없는 사물, 하물며 뿌리 없는 생명이 어디 있을까. 모든 쓸쓸함은 할아버지 심으신 감나무 그늘 밑으로부터 뻗어 오른 줄기, 모든 쓸쓸함은 강아지풀 새하얀 맨발가락으로부터 휘날리는 나뭇잎, 쓸쓸함은 북풍, 앞 뒤 없는 적막, 쓸쓸함은 운명의 자물쇠, 그 언덕을 넘어와도 꺼지지 않는 황금의 감나무 처연한 횃불. 오늘도 그날처럼 펑. . 눈이 오려는 듯 하늘 몸 무겁다.(강현국)

 


'녹색연구원chaii'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살심과 본능  (0) 2018.09.17
작별인사  (0) 2018.09.10
펄럭이는 바람  (0) 2018.08.30
까칠함의 극단  (0) 2018.08.23
맨발로 뒷굽 들고  (0) 2018.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