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아래/김명인
어느 집 굴뚝이 풀어놓았을까
소매 놓친 연기 산등성이 감고 맴돌지만
살얼음이 잠근 무논 속의 마을
건널 수 없어
이쯤에서 스치며 지나가는데
아궁이 앞에 누가 앉았나
저녁도 이슥해져야 한 시루
어둠을 익혀내는지
흰머리구름 층층엔 온통 팥빛 노을
하루 종일 밖에서 노느라 끼니때조차 까먹은
배고픈 아이들 대문 안으로 거둬들이시는
큰 엄마 거기 계시는가
철새들까지
줄지어 그쪽 숲으로 날아가고 있다
*철새들까지 줄지어 날아가고 있는 당신의 그쪽 숲은 어디인가? 시인의 그곳은 굴뚝이 풀어놓은 저녁 연기 오르는, 한 시루 어둠 익혀 흰머리구름 층층 팥빛 노을 번지는, 큰 엄마 거기 계신 잃어버린 시간 저쪽 유년의 공간이다. 그러나 그곳은 살얼음이 잠근 무논 속의 마을이어서 스치며 지나칠 뿐 건널 수 없다. 그 마을에 닿으려면 무논 속을 건너야 하고 무논 속을 건너려면 살얼음이 녹기를 기다려야 한다. 한여름이 온다해도 녹지 않는 살얼음 어떻게 하나! 어른이 되어 배부른 당신, 하루 종일 밖에서 노느라 끼니때조차 까먹은 배고픈 아이의 그 때로 돌아가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