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연 삼국유사 읽기
이 모임은 이하석 시인의 발의로 지난 해 5월 만들어졌습니다. 매월 첫 화요일 녹색연 사무실에 모여 두 시간쯤 삼국유사를 읽고, 회비 1만원씩 갹출하여 저녁 먹고 잡담하고 헤어지는 그런 모임입니다. 스토리텔링의 시대에 스토리 원형의 보고인 삼국유사를 읽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너무도 당연한 인식을 공유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하석(좌장), 정숙, 강현국, 박정남, 이자규, 김영근, 변학수, 박이화, 이혜숙, 항명자, 홍영숙, 박순남 등 모두 글쟁이들로 이루어진 가족이네요.
오늘은 봄바람 따라 멀리 백제 땅 미륵사지를 다녀왔습니다. 선화공주를 만나러 가는 서동처럼 설레는 가족 나들이였습니다. 새벽 여섯시에 출발하는 먼 여정이었지만 아무도 결석하지 않았고, 아무도 지각하지 않았습니다. 꽃망울 부푸는 벚나무처럼 온몸이 건지럽다는 증거이겠지요.
마이산의 태곳적 두 귀 앞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습니다. 저 큰 귀 속 잠 긴 문을 열면 얼마나 많은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혹은 창검을 들고, 혹은 우마차를 타고 천둥과 우레를 거느리고 뛰쳐나올지!
왕릉 박물관에서 우리는 시간을 거슬러 백제의 하늘 밑을 오래 거닐었습니다. 세월의 흔적인 돌멩이도, 돌멩이의 영혼인 오층석탑도, 오층석탑의 꿈인 국태민안도, 국태민안의 징표인 춤도 노래도 봄바람과 함께 출렁거렸습니다.
선글라스를 낀 서동의 노래는 아무래도 랩이 어울리지 않을까요? 향가면 어떻고 락이면 무슨 일 나겠습니까? 간절한 그리움은 시대를 벗어난 사랑의 자장일테니까요.
善化公主主隱
他密只嫁良置古
薯童房乙
누군가 말했습니다. 이 길은 선화공주가 서동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고. 닿을 수 없는 그리움의 길이라고. 역사는 아마 그렇지 않을까 추정할 뿐이지만, 200M 소나무 숲길에 상거한 두 릉이 선화와 서동이 누워 있는 곳임이 분명하다 우리는 믿었습니다. 이곳에 닿은 우리의 발길은 이미 서동과 선화의 신발을 신고 있었으니까요.
정치가 병들고, 경제가 병들고,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은 일상이 답답하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 우리는 행복했습니다. 미륵의 땅이 거기 흰 구름 아래 숨 쉬고 있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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