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막 만년 청풀은 25년이나 땅속에 묻혀 살고, 나무 그늘에 사는 그늘나비는 석양 무렵이나 어두운 날에만 날아다닌다. 황새는 울대가 없어 울지 못하고, 낙타는 눈이 늘 젖어 있어 따로 울지 않는다.
주둥이 없는 새는 주둥이가 없어 먹지 못하고 일생을 배고파 하다 죽을 때 한 번 울고 죽고, 가시나무새는 죽을 때 가시에 찔리면서 단 한 번 울다 죽는다. 발 없는 새는 평생을 바람 속에서 살다 땅에 내려오면 죽는다고 한다.
이런 것들을 떠올릴 때마다 시인이란 제가 본 풍경을 제 운명으로 삼는 자들의 다른 이름이며, 가장 의연하게 고독을 이겨내는 자들이란 말이 생각나고 운명에 만약이란 없다는 말도 생각난다.
내 안의 수많은 생각들이 무엇이 시를 정복하는가 묻는다면 아마도 나는 고독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 물음에 대답한 그 때부터 고독이 내 시작의 원동력이 되리라는 것을 깊게느낀다.
"나의 고독은 아무 거리낌 없이 당신의 고독을 알아본다."
자코메티의 조각상들을 보고 장 주네가 한 말이다.
딱 일주일만 헤엄치고 다시 진흙 속에 박혀 죽은 듯이 사는 肺魚처럼 살던 때를 생각한다. 그땐 시를 대하는 것이 만성적인 고통이 되었고, 나의 오늘은 나의 어제를 거부했다. 나의 고독은 고통과 독대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내 시의 비밀이다.
...
미국의 여성작가 델마 톰슨이 전쟁 중에 남편을 따라 사막에서 군대 생활을 할 때였다. 그 생활이 너무 힘들어 견디다 못해 아버지한테 편지를 썼다. 도저히 견딜 수 없으니 이혼을 해서라도 집으로 돌아가겠다. 이런 곳보다는 차라리 감옥이 낫겠다는 내용의 편지였다. 딸의 편지를 받아본 아버지의 답장은 이랬다.
"두 사나이가 감옥에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한 사람은 흙탕물을, 다른 한 사람은 별을 보았다."
아버지의 감동적인 이 편지가 훗날 델마 톰슨이 작가가 된 계기가 되었다. 아버지의 두 줄의 편지를 소재로 <<빛나는 성벽>>이란 소설을 썼다. 작가가 된 뒤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자신이 만든 감옥의 창을 통해서 별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땅속의 물을 부르기 위해 먼저 한 바가지의 물을 붓는 마중물처럼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의 미래를 태어나게 한다는 말을 나는 믿는다. '두드림'은 몸으로 배우고 긍정의 결로보며 꿈을 구는 것과 같다면서 두드림을 'Do dream'으로 본 명장 임동조 석공은 '너는 소질이 있다'는 스승의 말 한 마디가 자신을 명장으로 태어나게 했다고 말했다. '너는시인이 될 거야'라던 초등학교 4학년 담임 김한숙 선생님의 말 한 마디가 나를 시인이 되게 했다. 선생님의말씀은 나를 시인이 되게 한 첫 말이며 첫 긍지를 심어준 말이기도 하다. 나에게는 선생님의 말씀 한 마디가 창조의 놀이를 위해서는 거룩한 긍정이 필요하다(니체)는 말처럼 내 창작을 위해서는 필요한 거룩한 긍정이다. 첫 긍지는 첫 자부심이 되고 첫 자존심이 되었다. 이것이 유년사절에 닿아 있는 내 시의 비밀이다.
'시가 있는 응접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프리카 4 (0) | 2012.07.19 |
---|---|
할머니의 새끼 (0) | 2012.07.13 |
다른 눈을 뜨게 하는 비밀/천양희 (0) | 2011.09.24 |
[스크랩] 의자와 노랑 사이에서 외 1편/이원 (0) | 2011.07.24 |
[스크랩] 빨간불/이하석 (0) | 2011.07.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