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 무위진인無位眞人
어느 잘 생긴 문인의 명함을 받아보니 그 位相이 찬란하다. ***회장, ***위원장, ***협회장, ***위원, ***이사, ***주간, ***사장, ***고문, ***문인협회회원, 국제***문인협회회원, ...... 이름을 다 외울 수가 없다. 생각 있는 시인은 '시인'이라는 이름조차 번거로운 虛名이라 여기는데 그 수많은 위상을 무겁게 짊어지고 어떻게 때 묻지 않은 최초의 언어를 가볍게 구사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깨닫고 보면 우리는 한 군데도 머물 바가 없고, 머물 수도 없는 무위진인이다.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선생, 학생 등과 같은 위상도 다 경직된 사회적 허명에 불과하다. 우리들의 삶에서 이런 이름만 내다버려도 내면의 비만증은 몰라보게 치유된다. 죽어서까지 비문에 이름을 새기려고 안달인 한국인들에게 이런 제안이 얼마나 받아들여질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말이다.
▣엊그제께 갖고 싶은 명함을 하나 갖게 되었다. 갖고 싶은 명함을 가졌다는 것은 갖고 싶은 자리, 하고 싶은 일거리를 찾게되었다는 뜻이다. ***이사장, ***발행인 겸 주간, ***자문위원, 거기다 시인, 문학박사, 전직 대학총장까지 적어 넣었다. '어느 잘 생긴 문인의 명함'까지는 아니라하더라도 '때 묻지 않은 최초의 언어를 가볍게 구사할 수' 있는 수준은 훨씬 아니다. 공복의 징표이리라. 외적 공복이 내적 비만의 통로임을 알겠다. 정효구 교수에게는 절대로 내 명함을 건네지 못하리라.(2011.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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