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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응접실

황혼의 명상

by 고요의 남쪽 2009. 11. 16.

황혼의 명상/이진엽


새들은 서쪽으로 날아가고

회색의 능선 위로 노을이 물들고 있다

빛에 휩쌓인 저녁구름

어떤 놀라운 신비가 성냥을 그으며

내 가슴을 불태웠다

이 큰 우주 속에

지금 나는 어떻게 있는가

황혼이 짙어갈수록

끝없이 헝클어지는 만상의 몸짓 앞에

나는 조용히 무릎을 꿇는다

쉬어라, 이젠

저 먼 산마루 위로 별이 또 뜨리니

마침내 아이들도

숲길의 작은 집에서 곤히 잠들 것이다


*황혼은 능선 너머 새들 날아가는 서쪽에 있고, 명상은 끝없이 헝클어지는 만상의 몸짓 앞에 있다. 황혼이 명상을 유발하기도 하고 명상이 황혼을 불러오기도 한다. ‘이 큰 우주 속에/지금 나는 어떻게 있는가’? 실존의 존재 방식에 대한 자기 물음은 황혼에 의한 것이고, ‘쉬어라, 이젠’하는 황혼 빛 목소리와 마침내 아이들을 곤하게 잠재우는 황혼의 솜이불은 조용히 무릎 꿇는 당신의 해맑음, 저 먼 산마루 위에서 반짝이는 명상의 별빛이 불러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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