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숙의 생, 외상外上 같은 삶
대결정심大決定心
최고의 사탄은 우리를 위협하는 죽음이다. 죽음이 위협하면 누구나 뒤뚱거리며 고백한다. 그러나 죽음은 생의 목적지이자 종점이다. 아니 도달점이자 전환점이다. 그러니 어디한 번 죽어도 좋다는 분심을 내어 참삶을 살고자 전념해보면 어떨까. 죽어도 좋다고 덤비면 지나가던 모든 사탄들도 자진해서 길을 피한다. 사탄보다 더 무서운 것이 죽어도 좋다는 결정심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 번도, 그리고 아직도 그 길의 끝까지 가보지 못하였다. 그때 왜 나는 코피를 내거나 코피를 흘리거나 끝장을 보지 못하고 울음 속으로 도망치고 말았을까. 끝장 보지 못하는 삶의 자세가 가장 무서운 사탄이다.
나는 한 번도, 그리고 아직도 그 길의 끝까지 가보지 못하였다. 입영하기 전날 밤이었다. 작은 도시의 한 여인숙;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와 ‘떨어진 가랑잎에서 들리는 지난여름 풀무치 소리’를 뒤적이며 밤을 지샌 기억이 있다. 한 후배 시인은 올봄에 명자꽃이 피지 않는 이유를 내 마음이 뜨뜻미지근한 36.9도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는 한 번도, 그리고 아직도 그 길의 끝까지 가보지 못하였다. 내 말은 경상도 상주 말도 아니고 충청도 보은 말도 아니다. 당신은 내게 고향이 어디냐고 묻는다. 나는 철봉대를 껴안고 혼자 노는 쓸쓸한 아이였다. 분심을 내어 전념해보지 삶은 가숙의 생, 외상外上 같은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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